올해 프로그램 개발경력 10년째인 P씨(37)는 국내 손꼽히는 코볼 전문가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L그룹 계열 SI회사 프로그래머였다. 그러나 지난해말 IMF영향으로 회사경영이 급속하게 악화되면서 그의 인생항로에도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왔다.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의사결정을 한 것은 지난 3월 L사가 대대적인 명예퇴직을 단행한 때였다. 그는 그때 미국의 한 헤드헌터로부터 미국 유수의 SI업체의 Y2k팀에서 한번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그 길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미국행에 올랐다가 불과 3개월여 만에 다시 귀국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P씨는 코볼이라면 자신이 있었고 또 무엇보다도 미국 헤드헌터가 인터뷰를 할 때 최소한 연봉 5만달러를 보장했을 뿐 아니라 1년 안에 업무성과에 따라 30~50% 더 얹어 주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아무 미련없이 미국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전혀 달랐다. 미 헤드헌터는 처음 한두달 동안은 P씨를 찾아와 『채용하기로 한 회사에 급한 사정이 생겨 채용시기를 조금 연기하게 됐다』고 변명하더니 석달째부터는 아예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제서야 헤드헌팅사가 등록비, ID카드 및 취업비자 발급비 등의 명목으로 지금까지 받아간 수수료만도 1천만원을 족히 상회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전형적인 취업사기를 당한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같은 취업사기의 피해자가 P씨 한사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최근 국내 유수의 SI업체들마저 전직원의 10~20%가 한꺼번에 감원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 아침에 실직의 길로 접어든 많은 프로그래머들은 대부분 「하루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때문에 해외취업을 미끼로 접근하는 유령 헤드헌터들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국내에서도 최근 헤드헌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설립되고 있고 또 이들 중 일부 헤드헌터는 국내 프로그래머들의 해외취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으나 대부분 전문성 결여로 인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급기야 국내에 진출한 외국회사들이 최근 본사의 요청에 따라 적극적으로 국내인력 주선에 나서고 또 인력이 남아도는 SI업체들도 자구책의 일환으로 독자적으로 인력송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이 사업 역시 아직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통신분야 전문 헤드헌터로 유명한 HT컨설팅(대표 김낙기)이 최근 일본에 20명의 프로그래머를 한꺼번에 송출한 데 이어 미국, 유럽 등에도 Y2k 인력을 비롯해 컴퓨터그래픽 전문인력 송출사업을 적극 추진, 벌써부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최근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5백여명의 정보통신 전문인력들의 자세한 이력사항을 DB로 구축하는 한편 일본에 추가로 파견할 코볼 전문가 및 영국에 파견할 그래픽 전문가 선발을 위한 구체적인 인터뷰 계획도 각종 정보통신 주, 월간지에 발표함으로써 관심을 끌고 있다.
이 회사 김낙기 대표는 『국내 프로그래머 해외 취업은 몇 가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올 하반기 미국의 취업이민 쿼터 확대 등을 계기로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그는 그 이유로 『컴퓨터 2000년(Y2k) 문제해결을 위한 코볼 전문가나 일반 프로그래머 부족현상을 심각하게 겪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이 최근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서 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 등으로 인건비가 저렴해진 한국의 프로그래머 채용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서기선 기자>
많이 본 뉴스
-
1
스타링크 이어 원웹, 韓 온다…위성통신 시대 눈앞
-
2
美 마이크론 HBM3E 16단 양산 준비…차세대 HBM '韓 위협'
-
3
애플페이, 국내 교통카드 연동 '좌초'…수수료 협상이 관건
-
4
단독CS, 서울지점 결국 '해산'...한국서 발 뺀다
-
5
카카오헬스, 매출 120억·15만 다운로드 돌파…日 진출로 '퀀텀 점프'
-
6
LG 임직원만 쓰는 '챗엑사원' 써보니…결과 보여준 배경·이유까지 '술술'
-
7
美매체 “빅테크 기업, 엔비디아 블랙웰 결함에 주문 연기”
-
8
NHN클라우드, 클라우드 자격증 내놨다···시장 주도권 경쟁 가열
-
9
BYD, 전기차 4종 판매 확정…아토3 3190만원·씰 4290만원·돌핀 2600만원·시라이언7 4490만원
-
10
[CES 2025] 삼성SDI, 첨단 각형 배터리·전고체 배터리 공개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