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 「한글」사업 포기는 90년대 국내 소프트웨어(SW)산업계 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이번 「한글」사업포기가 국내 SW산업계는 물론 컴퓨터 사용자들을 경악시키는 것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치열하게 경쟁했던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자본을 받아들였다는 점 때문이다.한컴은 지난 89년 「한글 1.0」을 개발한 이후,만 9년동안 MS라는 공룡과 대결하면서도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지켜 한국 SW산업의 자존심으로 여겨져왔지만 최근 최악의 경영위기에 빠지면서 MS에 투항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한컴이 이처럼 주력사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경쟁사의 투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원인은 심각한 상태에 빠진 자금난 때문.
그동안 만성적인 자금압박에 시달려온 한컴은 지난달 이미 2억5천만원을 1차부도를 내고 막판에 겨우 부도를 모면하는 등 하루하루를 힘겹게 이어갈 정도로 극도의 경영위기 상황에 빠져 있었다.이미 2달전부터는 종업원에게 월급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유통업계나 증권가에는 한컴이 6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그 와중에 지난해말부터 국내 주요 전자업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투자유치에 나섰으나 한컴의 재무구조가 워낙 안좋은 데다 특히 IMF체제이후 대부분의 기업이 신규투자를 중단함에따라 국내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유치가 사실상 물건너 간 상태였다.이찬진 사장은 이에따라 그동안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최종적으로 경쟁사인 MS에 투자요청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 불법복제 관행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최근 MS의 저돌적인 공세는 한컴의 입지를더욱 좁혀 버렸다.한컴은 이미 기업시장의 대부분을 MS에 넘겨준 상황에서,불법복제가 난무하고 사실상 「돈이 안되는」 일반 소비자 시장에만 의존하고 있었다.더군다나 학교에 대한 「MS워드」 및 「MS오피스」 1백만개 무상제공과 같은 막강한 자본력을 내세운 MS의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은 한컴을 더욱 궁지에 몰았다.
이밖에 글로벌 경영이 확산되면서 MS오피스가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잡아가는 추세도 어쩔수 없이 「한글」의 시장축소를 불가피하게 해 한컴은 이미 수익성이 없는 워드프로세서로서는더 이상 MS에 대항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된 근본적인 배경을 한컴의 사업전략 실패에서 찾는 사람들이 적지않다.세계적인 컴퓨터 환경이 윈도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할 때 도스버전을 고집,윈도버전을뒤늦게 출시,시장을 놓쳐 버린 것이나 시장성이 거의 없는 IBM OS/2버전 개발에 착수한 것등은 모두 실패작으로 평가된 대목이다.
이와함께 기업용 시장을 적절히 공략하지 못한 것과 그룹웨어,인터넷 접속서비스,컴퓨터교육사업 등으로 확장해온 사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등은 모두 한컴이 지금처럼 남지않는 장사를 하게 된 배경이 됐다.
한컴은 따라서 지난해 11월 자회사인 「한컴네트」의 핵심사업을 매각한데 이어 올해도 「한컴교육나라」「제이소프트」등을 독립법인으로 분리하고 한때 2백명을 넘던 인원도 30명 정도로 줄이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나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컴의 이번 결정은 열악한 한국 SW산업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로도 평가되고있다.막강한 자본력에 9년동안이나 대항해 온 한컴이지만 결국 「한글」과 「한글과컴퓨터」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이게 됐고 이찬진사장은 결국 「한글」을 버리고 「한컴」을 선택한 것이다.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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