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외국계업체들, ERP "가격파괴" 경쟁

대기업의 ERP 수요를 놓고 SAP, 오라클, 바안, SSA 등 주요 외국계 ERP 공급업체들의 수주전이 과열양상을 띠고 있다. 이들 ERP 공급업체는 올 들어 위축된 수요로 수주난에 시달리자 공급가격을 대폭 낮추는 등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어 점차 출혈경쟁으로 치달을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ERP시스템 도입계획을 밝힌 대기업은 대우와 대우건설, LG산전, 롯데제과와 롯데쇼핑 등 5개 업체 남짓. 많지는 않지만 업체당 하드웨어와 컨설팅 비용을 포함한 ERP 공급규모는 수십억원에서 1백억원에 달한다.

이는 물량 자체로도 큰 규모지만 앞으로 ERP를 도입할 대기업의 업체선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외국계 ERP업체들은 이들 대기업의 수주에 거의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최근 외국계 ERP업체의 본사에서 고위 임원을 한국에 파견하는 일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수주전의 양상은 공급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RP업체들은 대부분 기존의 공급관행과 비교해 절반 이하의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도 ERP업체들이 향후 수요확대를 겨냥해 대기업에 대해 전략적으로 공급가격을 낮춘 적은 있지만 절반 이하의 공급가격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최근 ERP업체들의 수주난이 심각함을 반증하고 있다.

수주전이 치열해지면서 업체들의 수주활동을 둘러싼 뒷소문도 무성하다. 『A사는 시스템을 완전히 구축한 후에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제의했다』 『B사는 무조건 경쟁사의 절반 값에 공급하겠다더라』 『C사는 공짜로 컨설팅해 주겠다더라』와 같은 소문들이다. 이에 대해 해당 ERP업체의 관계자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가격을 낮추려고 수요업체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 아니냐』는 반문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헛소문일지라도 이같은 소문이 흘러나오는 것은 ERP업체들의 대기업 수주전이 앞으로 과당경쟁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일부 대기업이 최근 ERP업체에 최소한 1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 시험구축을 공짜로 요구하고 ERP업체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를 들어준 것은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외국계 ERP업체들이 모 중견기업의 15억원 상당 ERP 프로젝트에 뛰어들면서 5억원 미만에 낙찰된 결과에서도 출혈경쟁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외국계 ERP업체들은 최근 심각한 수주난을 겪고 있는데 올 들어 한건도 수주하지 못한 업체도 있다. 그나마 수주한 프로젝트도 대체로 컨설팅 비용을 포함해 10억원 미만의 소규모 프로젝트다. 그렇지만 외국계 ERP업체들은 한국의 시장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본사로부터 대규모 자금지원을 받고 있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외국계 ERP업체들을 과당경쟁의 장으로 내몰고 있다. 또 일부 업체는 아예 본사로부터 한국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급가격을 낮추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대기업에 대한 ERP 수주전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작 대기업은 어느 정도 특정 업체로 기운 상황에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선정 자체를 보류해, ERP업체들을 애타게 만들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ERP 수주전의 결과는 올 7월께 가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그때까지 치열한 수주전은 ERP업체 모두에 부담을 주겠지만 그동안 부풀려졌던 공급가격의 거품을 없애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업계 한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신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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