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타, 세계 방송기기시장 "대약진"

「NAB」는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방송기기전시회로 전세계의 방송국이나 방송기기 제조업체에는 방송기술 동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리다. 지난달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NAB98」 역시 그런 자리였으나, 특히 일본의 마쓰시타전기산업에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 4대 네트워크 가운데 유일하게 마쓰시타 방송기기를 구입한 적이 없는 ABC가 디지털 고화질방송의 제작, 송출을 맡는 「HDTV릴리스센터」를 마쓰시타와 공동으로 설립하고, 여기에 마쓰시타의 방송기기를 도입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쓰시타가 4대 네트워크와 모두 거래할 수 있게 됨은 물론 기술력도 인정받아 장래(디지털 방송시대)의 성공에 필요한 입지까지 어느 정도 갖췄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세계 방송기기시장을 거의 독식해 온 소니의 아성이 그만큼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쓰시타의 약진은 수년간에 걸친 방송기기시장 대공략의 결과다. 그리고 그 첨병역은 비디오카메라, 비디오테이프리코더(VTR), 편집기 등으로 구성되는 디지털VTR시스템 「DVCPRO」가 맡고 있다.

지난 96년 1월 등장한 DVCPRO는 그해 7월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에서 뉴스취재용으로 호평받은 것을 계기로 보급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97년에는 미국의 CBS와 NBC가 각각 30억엔을 투입해 DVCPRO의 비디오카메라를 1천5백대씩 사들였고, 영국 BBC와 중국의 중앙전시대(中央電視臺) 및 오스트레일리아의 채널7 등도 잇따라 구매했으며, 11월에는 일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TBS가 도입을 결정했다.

이 결과 DVCPRO의 97년 말 누계 수주대수는 약 4만대. 소니의 경쟁기종인 「베타캄SX」가 약 1만대, 그 상위기종인 「디지털베타캄」이 약 3만2천대인 것을 감안하면 디지털VTR분야에서 마쓰시타는 소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셈이다.

아날로그 방송기기분야는 사실 소니의 독무대다. 방송국이 채용하는 VTR규격의 경우 90% 이상의 점유율로 독식하고 있다. 이런 소니에 그간 참패해 온 마쓰시타는 디지털방송으로의 이행이라는 의미있는 시기에 DVCPRO로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DVCPRO의 성공비결은 판매시점(타이밍)과 가격, 그리고 편리성 등이 모두 당시의 요구와 일치한 데 있다.

95년 전세계적으로 위성방송이 추진되면서 방송의 다채널화가 현실감을 띠기 시작했는데, 채널 증가에 따른 채널당 수익이 떨어지기 때문에 방송국에는 프로그램제작비용 삭감이 절실한 문제로 다가왔다. 이에 따라 종래 가격보다는 화질을 우선시해 온 방송용 VTR시스템에 대해 일정의 화질을 유지하면서 초기 투자와 가동비용을 낮출 수 있는 기종을 요구하는 수요가 생긴 것이다.

마쓰시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가정용 디지털비디오카메라(DVC)와 호환성있는 DV포맷을 새 방송VTR시스템용으로 채택해 저가의 DVCPRO를 내놓은 것이다. 새 방송VTR 규격 개발비를 안쓰고, 대규모집적회로(LSI) 등 주요부품을 가정용과 공용함으로써 제작비를 절감한 결과다.

판매가격은 DVCPRO가 2백만엔, 상위기종인 DVCPRO50이 5백만엔 정도인 데 대해 소니의 베타캄SX는 4백만∼5백만엔, 상위기종인 디지털베타캄은 6백만∼7백만엔으로 가격차이가 크다.

편집의 용이성도 DVCPRO의 장점이다. 디지털영상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축적, 송신하는 데 불가결한 데이터압축에 DVCPRO는 동영상을 구성하는 프레임(정지화면) 1장 속에서 일정 비율로 데이터를 압축해 가는 「프레임내압축」방식을 채용해 비디오테이프의 편집이 쉽다. 이와 달리 베타캄SX는 영상의 변화를 계산해 2장의 정지화면을 1장으로 압축하는 「프레임간압축」방식을 각각 채용하고 있는데, 복수의 프레임에서 압축이 이뤄지기 때문에 테이프의 분할 부분에서 전후의 영상이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해 작업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여기에 소니의 전략상 오류도 DVCPRO의 성공에 일조를 하고 있다. 소니는 디지털시대도 기존 아날로그 VTR 시스템인 베타캄으로 주도해 나간다는 방침을 내세워 왔다. 그러나 이 방침은 「일정 화질에 저가 시스템」을 요구하는 방송국내 실정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그 틈새를 마쓰시타가 비집고 들어온 셈이다.

소니는 뒤늦게나마 전략을 수정하고 대응에 나섰다. 지난 1월 업무용과 방송용으로 분류돼 있는 영상기기를 사업부를 통합해 「브로드캐스트&프로페셔널 시스템 컴퍼니」를 신설하는 한편 그간 기술자 중심의 방송기기 부문에 기술자 출신이 아닌 책임자를 앉혔다. 기술보다는 시장요구를 우선으로 반격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방송은 디지털시대로 본격 이행하고 있다. 미국 4대 네트워크의 디지털방송규격이 각기 다르듯이 이 디지털 방송시대 방송국의 경영방침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기업체에 요구하는 방송시스템 역시 제각각일 것이 뻔하다.

이런 디지털 방송시대에 마쓰시타의 맹추격으로 좁혀진 소니와 마쓰시타간의 거리에 어떤 변화가 또 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화질최우선, 기술지상주의 경향이 강했던 방송용 VTR시스템 시장이 앞으로는 마케팅력의 우열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점이다.

<신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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