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뎀은 PC이용자들의 사치품인가. 요즘 인터넷을 비롯한 PC통신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모뎀이 PC주변기기의 총아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인식은 완전히 불식되고 있다. 특히 모뎀은 PC주변기기 중에서 사용인구의 증가세는 물론 기술진보가 가장 빠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장규모가 큰 편이다. 우리나라처럼 신기술 도입에 따른 세대교체가 빠른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고속성장을 해온 우리나라의 모뎀시장은 지난해 1천억원 규모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올해 모뎀시장은 경기불황으로 작년의 절반규모를 조금 넘는 6백억원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내년에는 좀더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이미 국내 다이얼업 모뎀의 성장은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에 따라 모뎀업계는 국내 시장에서 더 이상의 이윤창출은 어렵다고 보고 수출을 통한 활로개척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모뎀수출은 약 7백30만달러로 미미한 편이었으나 올해는 각 업체별로 수출목표를 늘려잡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어 모뎀수출 1천만달러 이상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모뎀이 처음 보급되기 시작한 때는 87년 말이었다. 당시 컴퓨터통신의 시조격인 케텔(Ketel)이 3백bps급 포트 50여개를 서울지역에 한해 서비스하면서부터 일반인도 모뎀을 접할 수 있었고 천리안도 곧이어 통신서비스를 개시했다.
당시 최신모뎀이었던 1천2백bps 모뎀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비싼 1백50만원대의 가격으로 판매되었고 국내 모뎀시장은 콤텍, 데이터콤, KDC 등이 주로 제품을 수입판매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실질적인 한국 모뎀산업의 역사는 88년 자네트가 최초의 국산모뎀을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자네트가 설계한 1천2백bps급 국산 모뎀1호는 다소 의외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국내 형식승인 규격을 통과하기 위해 내장형 모뎀인데도 외장형 모뎀의 커넥터를 달고 나온 것. 당시 국내에는 내장형 모뎀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88올림픽 이후 컴퓨터통신 업체의 2천4백bps 호스트모뎀 장비도입이 활성화하면서 자네트, 콤텍, 데이터콤 등 주요 모뎀업체도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들어섰다. 이 시기의 주요 모뎀칩 공급업체는 시에라, 록웰, SSI 등이었으며 특히 록웰은 하이텔, 천리안의 호스트모뎀에 칩을 납품하는데 성공하면서 국내시장 장악의 발판을 마련한다.
89년 들어 2천4백bps의 모뎀이 대중화되었는데 이 2천4백bps 모뎀부터 압축 및 에러정정 기능을 갖춘 현대적 개념의 모뎀으로 평가된다. 91년 이후 9천6백bps에서 14.4kbps로 서비스속도가 빨라지면서 「14.4kbps 모뎀시기」가 열렸다.
이와 동시에 시러스로직, UMC, PCTEL, TI등 많은 칩제조업체가 국내 모뎀시장을 두고 록웰과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하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라이프사이클이 가장 길었던 14.4kbps 모뎀시기(91∼95년)는 국내 모뎀업계가 회상하는 「좋았던 때」였다.
93년도에 들어 자네트, 맥시스템, PC라운드의 트로이카 체제가 확립되었고 PC통신업계도 유료서비스를 정착시켜 시설투자를 강화하는 등 PC통신 관련시장의 판도가 거의 형성되었다. 95년도부터 28.8kbps 서비스가 개시되면서 록웰은 국내 일반 판매시장의 80% 이상, 국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시장의 1백%를 석권했고 시러스와 UMC 등 모뎀칩 경쟁사는 28.8K 기술도입에 실패, 무너지고 말았다. 국내 모뎀시장에서 록웰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일부 모뎀업체는 록웰사 이외의 칩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충성의 맹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나타난 강력한 경쟁세력이 US로보틱스다. 이 회사는 33.6K 모뎀을 먼저 출시하면서 56K 업그레이드 보장이라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소매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다.
97년 3월 US로보틱스는 독자적인 x2기술을 채용한 56K 모뎀을 국내 출시하고 뒤이어 록웰진영도 서둘러 K56 플렉스방식의 모뎀을 양산하면서 56K 모뎀 전쟁이 불붙게 됐다. 이에 따라 국내 모뎀시장은 거의 모든 모뎀업체와 PC통신업체가 이 x2와 K56 플렉스 진영으로 양분되는 유례없는 혼란속에 빠진 상황이다.
98년 5월 현재 x2진영은 v.90규격 제품을 순조롭게 출시하고 있는데 비해 k56 플렉스 진영의 v.90 모뎀 출시는 지연되고 있다. 이런 시장의 진공상태를 틈타 TI, 루슨트 테크놀로지, 시러스로직 등이 국내 모뎀 시장을 맹공략해 업계판도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요즘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경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삼보, 대우 등 여러 PC제조업체에서 값싸고 쓸만한 소프트모뎀을 대담하게 채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국내 모뎀시장이 세계에서도 가장 신속한 「소프트화」를 경험하고 있는 점이다.
또 우리나라 전체의 연간 총모뎀생산량이 대만의 아즈텍이나 E테크와 같은 기업의 한달치 수출물량에도 못미치는 것을 고려하면 국산모뎀의 수출확대 가능성은 아직도 많은 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5천7백만대 규모의 세계 모뎀시장 중 70%를 석권하고 있는 대만 모뎀업체들이 기술력에서 우리 업체보다 나은 점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복잡한 통신망 체계 덕분에 악조건 하에서도 높은 성능을 내는 모뎀설계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며 모뎀칩의 업계공동구매 등을 통해 국산모뎀의 가격경쟁력을 제고한다면 수출시장에서 지금보다 월등한 성과를 올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모뎀제조업체가 모뎀칩의 가격과 성능을 비교해 자유롭게 칩공급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모뎀업체가 특정 모뎀칩 제조업체의 영향력에 기대어 국내 시장 지분에만 안주하는 식의 영업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다음 세기 차세대 모뎀시장에 참여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배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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