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덤핑 판정에 대해 화방전자는 『S램은 자사 전체 반도체 출하량의 1%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고, 또 연화전자는 『S램은 자회사를 통해 제조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히는 등 대부분의 대만 반도체업체들이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시장 전문가들도 S램에 대한 덤핑 판정으로 대만 반도체업계가 받는 피해는 미미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S램에 이어 D램과 관련해서도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D램과 관련해서는 대만 반도체업계 전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뱅거드, 에이서 세미컨덕터 매뉴팩처링, 모젤 바이테릭스 등 D램 중심으로 반도체사업을 벌이고 있는 업체들의 지난해 매출은 4백7억 대만달러다. 여기에 최근 각 업체들이 증산을 추진하고 있어 현재 발표된 올해 매출목표를 전부 합치면 약 7백66억 대만달러에 이른다. 게다가 D램 대미 수출비율이 높은 업체들이 대부분이어서 D램이 덤핑 판정을 받을 경우 그 여파는 S램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날 것이 분명하다.
반도체 분야의 덤핑 제소 문제는 지난 80년부터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그러나 대만 업계가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램 수출에 덤핑 결론이 난 후 D램산업을 의식한 대만 정부와 대만반도체산업협회(TSIA)는 대표자를 미국에 파견해 덤핑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주도해오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대만이 본격 가세한 것은 지난 95년. 당시 PC와 주변기기 산업이 발달한 대만으로서는 내수시장이 확보돼 있는 D램사업을 한일 의존 구도에서 탈피해 국가 전략사업으로 육성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메모리 분야에 한계를 느낀 미국과 일본업체들이 상업성이 떨어지기 시작한 일부 저급 D램기술에 대한 요구가 있었던 대만업체들에 기술을 제공하면서 대만은 짧은 기간에 세계 메모리시장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대만 반도체업계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현재 3%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해 대만 최대업체인 TSMC가 4천억 대만달러, 2위업체인 연화전자가 5천억 대만달러라는 초대형 투자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등 각사가 일제히 생산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점유율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D램 제소 움직임도 대만 반도체업계에 대한 견제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기적 불황으로 한국에 이은 제2의 D램 대국을 지향하던 대만 반도체 산업정책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당초 D램 불황기를 최고의 투자 적기로 판단해 정부 주도로 공격적인 투자를 추진했으나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개별업체들의 경영실적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된 것이 주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대부분의 대만 반도체업체들은 D램 라인 가동을 줄이고 이를 반도체 파운드리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대만 반도체업계의 D램 비중은 현재 한국, 일본에 비해 낮다. 그 대신 해외업체들의 주문에 맞춰 메모리든 로직이든 가리지 않고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이 매우 발달해 있다. 게다가 파운드리 사업 분야는 고도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팜리스업체들의 주문 증가가 가장 큰 원인이나 PC저가화로 세계 주요 반도체업체들이 비용절감과 납기단축 압력에 시달리면서 이를 대만업체에 생산을 위탁함으로써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실제로 파운드리 전업 업체인 TSMC는 올 1, 4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증가한 1백57억 대만달러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에이서, 역정반도체 등 D램 주력업체들도 파운드리 사업 비율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만 반도체업계는 D램에 대한 덤핑 판정을 피하기 위해 현재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어차피 국제무대 주역으로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의 하나일 뿐 아니라 이 문제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반도체 산업형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비교적 냉정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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