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이땅에 사는 인류가 동시에 걱정하는 화두를 찾으라면 단연 지구의 종말이다. 내부의 핵전쟁이든 혜성의 충돌에 의해서든지 지구의 파괴는 시공을 넘어선 전인류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최근 2000년(Y2k) 문제에 대한 세계 각국의 우려는 이에 비견될 정도로 증폭되고 있다. 전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대대적인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Y2k문제가 지닌 엄청난 파괴력 때문이다.
『2000년 1월 1일. 멀쩡하게 날던 비행기가 세계 곳곳에서 떨어지고 핵융합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된다는 뉴스가 계속된다. 일부에서는 하루만에 1백년치의 이자가 붙어 떼부자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방금 태어난 아기가 1백살이 넘은 노인으로 둔갑한다.』
이 모든 것이 하루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이 가장 믿었고 그래서 각종 제어장치를 맡겼던 컴퓨터의 오작동 때문이다. 2000년 대재앙은 이처럼 「컴퓨터 모라토리엄」에 의해 시작된다.
2000년을 1년 7개월여 남긴 현재, 인류는 「준비된」 대재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론 시간은 너무 없다. Y2k해법으로 현재 나온 솔루션들을 보면 대부분이 「영향분석-마스터플랜 수립-실제 변환작업-테스트, 적용」의 보통 4∼5단계로 구성돼 있다. 이같은 솔루션 대다수는 특히 우리보다 2000년 문제해결에 훨씬 먼저 나서온 선진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이미 4∼5년 전에 선보인 방법론이다. 즉 시간이 비교적 넉넉한 시절의 것들로 영향분석에서 마지막 시험 검증까지 완벽하게 수행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2년이 넘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할 때 Y2k 문제해결에 시행착오는 용납되지 않는다. 시행착오는 곧바로 실패로 귀결된다. 두번 다시 수정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일찍이 해결방안 모색에 나서온 선진국에서조차 Y2k를 「시간과의 전쟁」이라고 규정할 정도다.
따라서 막차를 탄 우리 입장은 불리한 게 한둘이 아니다. 먼저 Y2k문제 솔루션을 갖고 있는 해외업체들은 이 시장을 특수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개발비 등 모든 경비를 일시에 뽑아야 하는 외국업체들은 구석에 몰린 후진업체들을 상대로 짭짤한 장사를 할 것이 뻔해 구축비용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고 전문인력 또한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 가트너그룹은 『한국의 경우 2000년 문제해결에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미국과 호주에 비해 약 2년 뒤져있다』고 진단하면서 이에 따른 해결비용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함께 전문 인력확보의 어려움으로 예상보다는 2∼3배 지연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전산구축이 선진국에 비해 덜 확산돼 있으니 피해도 그만큼 적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이는 해결방안을 서두를 경우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은 될 수 있겠지만 무대책이 가능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금융권, 행정전산망, 제조분야 사회전반에 걸쳐 컴퓨터와 각종 시스템에 내장된 반도체칩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분야는 이제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응용프로그램 수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장칩과 관련한 문제에는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하며 또 설사 어느 특정 기업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인터페이스를 해야 하는 상대 기관이나 기업이 솔루션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전혀 쓸모가 없다는 점에서 Y2k문제는 사회 전반적으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국가적인 문제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우리정부도 Y2k문제를 시급한 국가현안으로 판단, 지난달말 국무조정실 산하에 「컴퓨터 2000년 문제 대책협의회」 설치 내용을 골자로 한 「컴퓨터 2000년 문제 종합대책」을 마련, 이 문제를 범정부 차원에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지방행정, 금융, 원전, 전력에너지, 통신, 운송, 항만, 의료, 중소기업, 산업자동화설비 10개 부문을 「중점 관리부문」으로 선정하고 이달에 민관 합동점검반을 구성, Y2k 대응실태와 진척상황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 각 부문의 Y2k 문제해결을 위한 기술과 정보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전산원에 기술 자문단을 구성하고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 전문기술인력 풀을 구성, 기술지도를 해나가기로 했다.
민간기업들의 해법찾기 노력도 본격화되고 있다. 먼저 삼성SDS, 포스데이타, 현대정보기술, 한전정보네트 등 시스템 통합(SI) 업체들이 올들어 잇따라 SCI, 캡제미나이 등 해외 솔루션 업체와 각각 협력관계 구축을 통해 2000년 연도표기 문제해결을 적극 추진중이다.
이는 Y2k 문제가 금융, 제조, 유통, 공공시장 등 사회전반에 이슈로 확산되면서 그룹 외 시장창출의 새로운 기회로 부상되는데다 협력업체를 통한 해외시장 개척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솔루션업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케미스, 베스트인포텍 등 5개의 국내업체 외에도 플래티늄, 캡제미나이 등 해외업체들이 국내 Y2k시장을 특수로 인식하고 자사기술의 차별성과 함께 가격경쟁력을 부각시키며 공공시장은 물론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활발한 영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솔루션업체는 줄잡아 4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대응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응은 아직 초보수준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이재범 서강대 교수는 『Y2k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다. 2000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문제가 아니다. Y2k는 넋놓고 있다가는 오히려 문제점만 증폭돼 혼란만 더하는 속성을 지닌 그야말로 고질적인 「버그」』라고 규정하며 『그러나 Y2k 문제에 관한한 우리 현주소는 이제 인식의 단계를 넘어서 초보수준』이라고 지적한다. Y2k 문제는 시간, 전문인력, 예산 세 가지 요소 확보가 동시에 필요한 사안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종합처방과 함께 특히 「시간과의 전쟁」을 선포,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 피해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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