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간과할 수 없는 중의 하나는 소프트웨어 공급업체들의 번들판매다. 공급업체간의 번들경쟁은 소프트웨어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소프트웨어 공급업체는 유명 응용프로그램을 대규모 PC제조 메이커에 소비자권장가격 또는 실제 소비자가격에 훨씬 못미치는 헐값에 번들공급하고 있다. 이유는 연간 판매량이 1백만대가 넘는 기성PC 시장만 잘 공략하면 매출확대와 사용자확보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소프트웨어의 재산적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매년 2백만명 이상씩 늘어나고 있는 PC사용자들은 이미 PC 메이커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다양한 종류의 소프트웨어를 번들로 제공하므로 굳이 돈을 주고 사지 않더라도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PC를 구입하면 대개 3~4종, 많게는 10여종의 응용프로그램이 번들로 제공된다. 때문에 PC를 판매하는 사람이나 구입하는 사람 모두 대기업 PC를 구입하면 정품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는 공짜」라는 의식이 높다. 이 뿐만 아니라 정품과 다름없는 시험판 소프트웨어를 수십만 카피씩 제작, 대학생들에게 배포하거나 심지어는 편의점에서까지 나눠주고 발행부수가 수만부에 이르는 잡지의 부록으로 제공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의 가치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행위는 자칫 小貪大失의 결과를 낳기 쉽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들어 소프트웨어 공급업체들간의 번들경쟁이 점차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경 한컴서비스와 마이크로소프트는 구두상으로 번들공급을 자제하자고 합의한 바 있었으나 업체간의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올들어 다시 한번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IMF 한파로 소프트웨어 유통업계에 위기의식이 고조되자 한컴서비스 박상현 사장과 마이크로소프트 김재민 사장은 『연간 수십억원의 매출이 감소되겠지만 소프트웨어산업발전을 위해서라면 번들공급을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밝혀 번들공급 중단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불법복제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번들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소프트웨어 상품권 제도 도입도 검토해 볼만하다. 번들 소프트웨어 대신 일정금액의 상품권을 PC구매자에게 제공한다면 소프트웨어를 제값 주고 사야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소프트웨어 업계는 덤핑 가격이 아닌 정상가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방법으론 불법복제의 온상으로 알려져 있는 대단위 전자상가의 조립PC 매장에 맛보기용(데모) 프로그램을 공급, 정품 구매를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PC구매자는 유명 소프트웨어의 일부 기능을 사용해볼 수 있고 상인들은 소프트웨어 정품을 불법복제해 주는 대신 맛보기용 소프트웨어로 대체할 수 있어 불법복제에 대한 위험부담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상가내 불법복제 또는 덤핑가격 유통을 막기 위해 조립PC용 소프트웨어의 공급가격을 낮추거나 소프트웨어 반품제도를 확대 실시할 필요도 있다.
또한 최근 속속 개설되고 있는 PC 애프터서비스 전문업체들에게 사용자의 불법복제 행위를 감시, 고발할 수 있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현재의 위기극복은 어느 한 부분만 노력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개발자는 질좋은 소프트웨어 개발해야 하고 소프트웨어 유통업계는 선의의 경쟁을 통한 정상유통에 나서야 한다. 또 PC업계는 불법복제 근절을 위한 자정운동을 벌여야 하고 사용자는 「불법복제는 범법행위」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소프트유통업계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발전을 위해 언젠가는 거쳐야할 과정이라면 지금이 바로 적기다.
<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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