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컴퓨터업계 구조 조정중.. "부익부 빈익빈" 심화될 듯

PC 산업의 고성장세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최근 컴팩 컴퓨터와 인텔은 각각 1/4분기 매출액이 전년동기와 비교해 거의 비슷하거나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아 업계 안팎에 충격을 주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인텔은 PC 시장의 수요 위축이 이같은 결과를 야기시킨 요인이라고 말했다.

컴팩은 북미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로 인한 가격 인하 압박을 그 요인으로 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만으로는 현재 컴퓨터 산업이 처한 현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예를들어 왜 컴퓨터 분야에서 최근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인가 등 많은 의문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시장 분석가들은 이에 대해 컴퓨터 산업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이같은 의문들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번 구조조정은 컴퓨터 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소수의 일류 기업들이 덩치를 키우면서 「파워 엘리트」로 부상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업체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워 엘리트군은 시장 점유율은 비롯해 서비스 및 기술 지원 체제 등 모든면에서 나머지 기업들을 압도하면서 기업 시장은 물론 가정 시장으로까지 세력권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일례로 컴팩, IBM, 휴렛패커드(HP), 델 컴퓨터 등 세계 4대 PC업체의 시장점유율은 출하량 기준으로 96년 26.7%에서 지난해엔 32.2%로 5.5%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지난해 PC 출하 증가분의 70%가 이들 상위 4개업체에서 생산된 제품이었다는 것이다.

4대업체의 이같은 점유율 확대는 패커드벨NEC, AST 등 중위권 업체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결과였다.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은 이같은 현실을 컴퓨터 산업의 「통합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상위 몇개기업이 시장을 장악해 가는 통합화 과정을 추동하는 요인은 우선, 대기업만이 누릴 수 있는 규모의 경제다.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막강한 부품 구매력을 바탕으로 부품 공급업체들에 적기에 싼값으로 물건을 공급할 것을 요구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가격 경쟁력에서 중하위 업체들을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기업은 더욱 규모가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PC 기술의 고성능화와 이로 인한 PC와 워크스테이션간 경계의 붕괴 현상도 통합화의 중요한 요인이다.

상위 업체들은 이같은 추세에 대응, 고성능 PC 서버를 무기로 기업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중소업체들은 이같은 추세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1천달러이하의 저가 PC의 등장 또한 대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면서 소수의 파워엘리트 위주의 컴퓨터 산업 구조조정을 재촉하고 있다.

대기업일수록 부품 구매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다 우수한 설계 능력을 바탕으로 1천달러이하의 저가 PC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천달러이하 PC는 미국 전체 PC 시장에서의 비중이 96년 7%에서 지난해 25%로 높아졌으며 이에 따라 PC업체들이 앞다퉈 공략에 나서고 있는 유망 분야로 떠올랐다.

이같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통합화의 과정에 대해 분석가들은 결국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의 컴퓨터 산업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컴팩 등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파워 엘리트군도 당장은 산업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어려움을 겪을수 있겠지만 곧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구조조정의 덕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중하위권 업체들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선 이미 패커드벨NEC와 AST가 고전하고 있고 애플 컴퓨터도 2년전 10%였던 점유율이 최근 5%까지 떨어질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럽에선 상황이 더 심각하다. 독일의 에스콤을 포함해 몇몇 업체들이 파산했고 나머지 업체들도 대부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보이고 있거나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의 ICL이 PC 시장에서 철수했고 이탈리아의 올리베티 컴퓨터는 노트북 컴퓨터와 서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선 이제 지멘스 닉스도르프만이 PC 시장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대형 업체들도 후지쯔와 도시바 정도를 제외하면 PC 시장에서 고전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분석가들은 이같은 상황이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소비자들은 PC 저가화에 따른 이익은 보겠지만 브랜드 선택의 폭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세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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