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매출 감소 비상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의 올 1.4분기 매출이 지난 89년 3.4분기 이후 8년 6개월만에 전년동기 실적을 밑돌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인텔측은 「전세계적인 PC시장 위축이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시장전문가들은 「1천달러 PC」의 본격적인 출하가 인텔에게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인텔도 최근 「1천달러 PC」용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MPU) 새 모델을 발표하면서 저가화 전략을 펴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고수익 체질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사실 인텔의 수익 악화 가능성은 지난해 중반(본지 97년 8월 13일자 국제면 참조)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는데, 이번에 그것이 현실적인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인텔은 지난 4일 자사의 올 1.4분기 매출 목표를 당초 계획했던 65억달러보다 약 10% 정도 낮춘 58억5천만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이 하향 조정치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10% 줄어든 것으로 올 4월 정식 발표되는 인텔의 1.4분기 매출이 실제로 이렇게 나타날 경우 인텔의 매출은 8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년 실적을 밑돌게 된다.

인텔의 주장처럼 세계 PC시장은 일본시장을 필두로 지난해 중반부터 수요가 크게 둔화되면서 전반적으로 위축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4.4분기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PC출하 증가율은 비록 성장세는 둔화됐지만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 정도 증가했고 미국시장도 약 20%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어 「수요 둔화」만으로 인텔의 매출 감소를 설명하기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1.4분기 인텔의 매출 감소를 저가 PC의 급속한 보급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1천달러 PC」라는 새로운 경향이 인텔에 직격탄을 퍼붓고 있다는 것이다. 1천달러 PC는 지난해 초 컴팩 컴퓨터가 최초 시판하면서 화제를 일으켰던 제품으로 현재 미국 전체 PC 출하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 PC경기가 악화되고 있는 지역에서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에 걸쳐 인텔은 「MPU는 진보해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MPU의 성능 향상에 주력, 거의 독점적인 상황을 연출하면서 수익성을 높여왔다. 당시 세계 PC시장에서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진화와 더불어 인텔의 이같은 논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MPU 성능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현재 일반화된 처리능력만으로도 상당수 고객들이 필요한 업무를 완전히 소화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중반부터 인텔의 논리는 다소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PC경기 악화를 배경으로 1천달러 PC가 급속히 붐을 일으키자 이같은 주장은 최근 설득력을 더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같은 시장 형태의 변화는 인텔과 PC업체간 역학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PC업계의 가격 및 제품 기획은 MPU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에 의해 좌지우지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저가 PC에는 인텔이 주도하는 최첨단 MPU를 채용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이릭스와 어드밴스트 마이크로 디바이스(AMD)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 영향으로 인텔의 MPU시장 점유율이 최근 75%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가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PC업체에 대한 인텔의 영향력이 점차 감소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의 변화가 인텔의 수익을 압박할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PC 1대를 팔면 몇백달러의 이윤이 남는 2천달러 PC시대가 지나면서 PC업체의 이익률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인텔이 MPU 업계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던 시대에는 대부분의 PC업체들이 인텔의 이익 감소분을 감수해 왔다. 그렇지만 MPU업체간 치열한 경쟁체제가 형성되면서 MPU업계의 입김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인텔의 이익 감소는 곧바로 MPU의 가격 인하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인텔도 현 상황을 직시해 올해 초 앤드류 그로브회장이 직접 『PC시장은 이제 고성능 서버에서 저가격 PC까지 4-5단계로 나눠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우리도 이에 대응해 전략 전환을 서두를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의 일환으로 인텔은 실제로 지난 4일 저가 PC용 보급형 펜티엄II인 「셀레론」을 발표했다. 셀레론은 올 후반부터 본격 출시될 예정인데 인텔은 기존 MPU시장 점유율을 무기로 셀레론의 단가를 크게 낮춰 호환 칩 업체들과의 경쟁 우위를 한층 높여나간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또 지난 9일에는 미국 중견 PC업체인 네트워크 컴퓨팅 디바이시스(NCD)와 제휴해 5백달러 이하급 네트워크 단말기를 공동 개발, 올 하반기에 출시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저가 PC 시장에서 인텔의 점유율이 확대된다해도 인텔이 예전과 같은 수익률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이유는 물론 전반적인 PC 수요 감소와 저가 PC의 상대적인 비율 증가 때문이다. 고성능 PC에 장착되는 MPU에 비해 저가 PC에 탑재되는 보급형 MPU는 마진폭이 적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보시스템시장 조사업체인 컴퓨터 인텔리전트(CI)는 인텔의 1.4분기 목표 하향 조정이 발표된 직후 『인텔의 이같은 조정은 일부 주요 PC업체가 지난해 4.4분기 유통 재고를 평소보다 늘려 잡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설득력 있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같은 우호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인텔이 예전과 같은 높은 이익률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인텔 자신도 『올 1.4분기 이익률은 지난해 4.4분기 59%보다 다소 떨어진 53%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장기적으로 이익률은 50% 전후로 형성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앤드류 그로브회장은 최근 PC 저가화는 인텔에 있어 「D램 사업 철수」, 「펜티엄 결함」 등에 필적할 만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는 지금까지 MPU 성능 향상에 매진해온 인텔의 사업 전략에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질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 하이테크산업과 증권시장을 주도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닌 인텔. 최근 미국의 하이테크업계와 증권업계는 인텔의 1.4분기 목표치 하향 조정과 앤드류 그로브회장의 사업 궤도 수정을 불안과 신뢰라는 두가지 모순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심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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