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정보통신 기술개발 기반 개혁

이상훈 한국통신 통신망연구소장

최근 우리는 IMF한파라는 현실인식을 통해 정부와 산업 그리고 우리의 삶의 곳곳에 형성되었던 모순과 왜곡된 가치의 환부를 도려내고 치유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함으로써 재도약을 위한 뼈아픈 몸짓을 하고 있다. 차제에 정보통신 분야의 기술개발 영역에도 몇 가지 요소를 짚어봄으로써 짧게는 변화된 환경에 빠른 적응력을 갖추고, 길게는 국가경쟁력의 안정적 기반으로서 정보통신기술이 자리매김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첫째로 기술개발 환경의 변화와 정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화로 표방되는 세계경제의 신질서는 정부가 더 이상 기업의 보호자, 감독자가 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오히려 국제 경쟁환경의 적응성을 높이는 강도 높은 조처와 시장개방이라는 강력한 정책의지를 종용하고 있다. 또한 기업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제한없는 기업활동을 원하고 있어 정부로부터 하달되는 지도나 지침을 달가워하지 않는 상황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와 함께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 욕구와 새로운 시장생성의 역동적 순환이 정부의 감독과 제어기능을 앞서가는 현상마저 이미 도처에서 전개되고 있다. 차제에 정부는 기술개발의 정책적 범위를 사업관리나 프로젝트 관리로부터 비전의 제시나 기술개발 주체간의 공정경쟁을 유도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국가경영과 국내기업의 체질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둘째는 기술개발 기반의 다변화에 따른 자율적 역할의 재정립이다. 전체 기술개발 자원이 양적으로 제약된 우리의 경우 자율적인 역할분담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기술개발 피라미드가 필요하다. 이제까지의 주요 국책 기술개발은 국책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대형 시스템 위주로 추진되어 왔으며 주로 대기업에 의해 상품화하고 정부의 간접적인 보호 아래 보장된 시장을 담보로 일정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키워 왔다. 이는 우리의 기술기반이 취약한 시대에 적합하고 효과가 있는 정책이었으나 오늘날 기업간 비차별적 동종제품들이 오히려 기업의 독자성과 기술력을 약화시켜 국내기업 및 시장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일부 역기능이 도출되고 있다. 즉, 통제되고 획일화되어 있는 기술개발 체제 및 역할분담은 효용이 이미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통신 산업의 속성상 기술개발의 중심은 신속성과 창의성을 갖추고 있는 벤처기업 또는 중소기업으로 점차 이동되어야 할 것이며, 국책연구소는 좀더 미래지향적인 기초 기반기술을 선도적으로 헤쳐나가는 선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기술 피라미드의 기저계층이 대기업으로부터 특화된 중소기업으로 변모해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대기업은 기술개발의 궁극적인 목표인 복합 상품화와 이를 통한 신사업 개발과 신부가가치의 창조, 그리고 경쟁력의 증대라는 역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역할의 전환기에 있어서도 국책연구소는 여전히 우리 기술개발 인력의 보고이며, 창의적 연구의 산실이라는 인식을 같이 가져야 한다.

셋째는 기술개발의 효용성 증대다. 오늘날 모든 기업들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술발전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의 기술발전은 기술간의 벽을 허물고 복합화하는 추세이며, 이는 기존의 사업영역들 간의 벽을 허물어 또 다른 거대시장의 출현을 예고하는 등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른 기술분야로부터 복합상품과 서비스의 가능성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즉 모든 기업은 기술의 다양성과 가능성만큼 기회와 기술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기업이 새로운 상품 및 서비스의 창출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경쟁력의 요체는 모든 신기술의 자체 확보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들 신기술의 창출과 이를 신제품으로 실현시키는 창의성과 응용력 그리고 상품화 기간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기술개발과 생산 및 마케팅의 긴밀한 통합을 요구하는 just-in-time(JIT) 기술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각 기업의 기술담당 책임자에게는 기업의 미래방향을 제시하고 자체기술과 조달기술을 선별하며 가용한 기술자원의 시너지를 모으는 미래 전략가로서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는 선진국의 경우 첨단사업일수록 기술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파악하는 능력이 최고 경영자의 필수적 덕목으로 자리잡는 현상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끝으로 기술개발의 원천인 창의력 있는 전문인력의 양성을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기술인력의 양적 확보와 외형에 치중해 온 인력개발 프로그램은 질적 수준의 확충과 내실이라는 건강한 인력양성 기반으로 거듭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즉 지속적인 재교육 등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개발의 원천을 확충하고 연구소로부터 학교로 향하는 고급두뇌의 편방향적 흐름 역시 양방향이 되도록 그 균형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출연연구소를 포함한 일정 규모 이상의 연구소에 기술개발 중심의 소규모 전문 대학원의 설립은 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올해 시작되는 정보통신 대학원의 성공여부는 여러 가지로 중요한 뜻을 갖는다 하겠다.

기술개발 기반의 개혁은 특정사업과 서비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과 정책, 그리고 산업구조 등에 널리 적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 기술개발의 각 분야에 위치하고 있는 기관 및 조직들은 지금까지의 역할 및 기능을 되돌아보고 강제의 논리 또는 집단이기주의 논리가 아닌, 시장의 논리 또는 경쟁의 논리에 입각하여 어려운 IMF시대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지혜로 무장하고, 거친 벌판으로 뛰어 나아갈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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