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소설방] 불꽃남자 박대리의 PC통신 탐험기 (10)

평소보다 좀 늦게 출근한 박 대리는 시장과 업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신문을 찾았다. 그러나 신문은 이미 다른 직원들이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쭈! 그렇다고 내가 신문을 못볼줄 알고? 요즘은 PC통신 접속하면 모든 일간지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만 한꺼번에 쏙쏙 뽑아서 볼 수 있단 말이닷! 핫 핫!!』

박대리는 검색 서비스인 「GO CLIP」를 이용하기 위해 PC통신에 접속하여 자신의 한글아이디인 「불꽃남자」를 입력했다.

『편지가 1통 도착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대리가 일주일 뒤로 다가온 자신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었다.

『어이, 이대리! 이거 뭐야?』

『뭐가? 청첩장말이야?』

『그래! 청첩장 찍는 돈이 몇푼이나 된다고… 좀 심한거 아냐?』

『심하긴 뭐가 심해? 자넨 IMF도 몰라?』

『이런 제길, 그놈의 IMF 소리 지겨워 죽겠네!』

『지겹긴 뭐가 지겨워. 초등학교 2학년짜리 내 조카가 7살된 동생이 과자 사달라고 조르니까 뭐라는지 알아?』

『뭐라고 그러는데?』

『그 녀석이 동생한테 하는 말, 「야! 임마! IMF 시대에 과자 사달라고 졸라? 이제 그런거 많이 먹으면 안되는 거야!」 이러더라니까…』

『거참 황당하군! 매스컴이 애들까지 버려 놓는다니까…』

『글쎄, 생각을 달리하면 꼭 애들을 버려놨다고만은 할 수 없을꺼야. 애들까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어른들이 좀 자중해야하지 않겠어? 안 그래?』

『그래도… 결혼식을 알리는 청첩장은 인사나 같은 건데…』

경제적 상황이 어려우니만큼 조금씩 아끼자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장난하기 좋아하는 박대리가 그냥 넘어갈리 없다.

『이대리! 결혼선물로 뭘 갖고 싶어?』

『왜? 갖고싶은 걸로 해주려고?』

『당연하지! 내가 누구야? 이대리의 둘도 없는 동기 아냐! 그러니 나 말고 누가 그런 선물 해주겠어!』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진 이 대리는 이게 왠 떡이냐는 듯 냉큼 갖고 싶은 것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데…

『자동차도 갖고 싶고, 근사한 집도 갖고 싶고… 히히…』

『흐음… 장난치지 말고 하나만 말해』

『됐어! 자네가 알아서 해줘!』

이 대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의 등을 툭 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박대리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으며 이 대리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일주일은 빠르게 흘렀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이대리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박대리를 찾아왔다.

『이봐! 갖고 싶은거 해주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이게 뭐야!』

『푸하하하… 왜? IMF시대에 어울리는 선물 아냐?』

『그래도 그렇지 자동차 사진을 덜렁 전자메일로 보내놓고… 그게 선물이야?』

『에이, 전자메일로 받은 청첩장에 전자메일로 보내는 선물! 얼마나 근사해? 자네가 입버릇처럼 말한 IMF시대에 딱!어울리는 선물이잖아!』

박대리는 고소하다는 듯 낄낄거렸고 약이 오른 이대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대리는 그런 이대리에게 책상 밑에 넣어둔 쇼핑백을 꺼내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선물이지.』

『……』

눈이 동그래진 이대리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집들이 할때 보자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으아아악!@# 이게 뭐얏!』

여느때처럼 PC통신에 접속해 전자메일을 확인한 박대리는 사무실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이대리가 보내온 전자메일에는 집들이를 대신한다는 내용과 함께 커다란 상에 잔뜩 차려진 음식 사진이 있었던 것이다.

『왜? 자네가 썼던 방법 아냐? IMF시대에 집들이는 무슨 집들이… 축하받았으면 된거지! 안 그래?』

『으쒸! 그래도 그렇지… 진짜 너무 하는군!』

『하하하… 장난이야! 오늘 우리집으로 가자고. 몇몇 동료들하고 과장님하고 함께 말이야.』

그날, 조촐하지만 깔끔하게 차려진 저녁상을 마주한 직원들에게 이대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젊은 우리들부터 쓸데없는 낭비를 줄이기 위해 간소하게 준비했습니다. 비싼 음식 많이해서 먹자고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저희 두 부부의 앞날을 축복해주신 분들께 인사하는 자리라고 생각한 것이니 너무 언짢아 마시고 모쪼록 이해해주십시오. 대신 술은 얼마든지 대접하겠습니다. 막걸리 두 말 사놨거든요! 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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