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대규모의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첨단기술일수록 그에 따른 개발실패의 위험도 크다. 따라서 중소업체 단독으로 이러한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럴 경우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이 정부지원 또는 민간주체의 산, 학 공동연구다. 대학과 연구소의 우수한 개발인력과 업체의 자본 및 상품화 능력이 합쳐질 경우 위험은 줄어드는 대신 최대의 개발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
『산, 학 협동의 필요성은 대학이나 연구소가 어떤 특정 아이템을 개발하고 이를 기업이 상품화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해당산업에 요구되는 기초기술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하고 현장 적응력을 지닌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의 산업인프라적인 효과도 결코 적지 않다』고 반도체장비기술교육센터 김광선 교수는 말한다.
이러한 산, 학 협동의 중요성은 부품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및 LCD를 포함한 각종 부품분야에서 이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서울소재 대학은 물론 KAIST, 호서대 등 지방대학들도 관련 연구소 및 센터를 설립하고 다양한 형태의 산, 학 공동사업을 추진중이다. 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전자부품종합기술연구소(KETI)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들도 주문형반도체(ASIC), 신소재, 센서 등 각종 부품관련 개발사업을 진행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모습과는 달리 아직도 산, 학 협동 활성화를 가로막는 많은 문제점들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현재 국내 대학과 연구소에는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많은 기술들이 개발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과제를 발굴하고 상담하는 등 산, 학 협동연구 관련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이 없어 이러한 연구결과 대부분이 그대로 사장되고 있는 실정이다.』(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허현회 차장)
국내 대학과 기업들이 지닌 구조적인 모순도 원활한 산, 학 협동을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국내 대학의 현실은 아직 연구논문을 중시하고 산업현장의 문제해결에 대한 열의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대학 교수들에 대한 평가자체가 발표논문 수나 세미나 참가와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현실적인 연구나 활동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정부출연 연구소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S대학 K교수)
『기업의 입장에서도 대학이나 연구소와 선뜻 손을 잡고 일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제품개발에 있어 상품성과 시장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기업측과 개발제품의 기술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연구원들간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리고 기업정보의 경쟁사 유출 등 현실적인 문제도 대학과 기업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C부품업체 P 연구소장)
하지만 산, 학 협동에 대한 필요와 명분만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활기찬 산, 학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보유한 연구개발 자원을 종합적으로 평가관리하는 일은 물론 산업계로부터 기술개발 과제를 발굴하고 기술지도와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일원화된 전담기구가 하루빨리 설립돼야 한다』고 대학 및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또 산, 학 연구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지원의지도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지난해 국내 8개 대학과 관련업체들이 산, 학 협동으로 추진한 차세대 2차전지 공동연구센터의 설립이 정부의 무관심과 지원기피로 무산돼 큰 아쉬움을 남겼다』는 전지업체 한 관계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의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가뜩이나 경영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 학 협동연구의 활성화는 국내 부품업체가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이자 대안이라는 것이 대학 및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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