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랍 성탄절로부터 시작돼 무인년 새해를 연결하는 연말연시 극장가가 자못 풍성하다. 코미디, 멜로드라마 위주의 한국영화들을 비롯해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가족영화, 제3세계 예술영화, 할리우드 오락영화 등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관객들은 그 어느 때보다 폭넓은 장르의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허리우드, 피카디리, 명보, 국도 등 서울시내의 굵직한 극장에서 1일부터 상영에 들어가는 「죽이는 이야기」는 여균동 감독에 황신혜, 문성근의 출연으로 무게를 더한 사회풍자영화. 3류 영화감독 구이도(문성근)는 여관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손님들의 정사장면을 훔쳐보는 종업원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자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영화를 원하는 말희(황신혜), 말희의 누드장면 대역인 춘자(전이다), 섹스와 액션이 가미된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하비(이경영)가 끼어들면서 영화는 웃음을 끌어낸다. 그러나 「죽이는 이야기」는 해프닝성 웃음만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 속 감독, 배우들의 아집과 타협과정을 통해 이 시대의 사회상과 인물상을 이리저리 비꼰다.
한국영화계 최고의 남자배우로 떠오른 한석규, 박중훈의 새 영화도 관심거리.
지난해 개봉했던 한국영화 중 최대 흥행작인 「접속」을 통해 멜로드라마를 인기장르로 끌어올린 한석규가 심은하와 호흡을 맞춘 「8월의 크리스마스」(감독 허진호). 이 영화는 지방도시를 배경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사진관 주인 정원(한석규)와 주차단속 공익요원인 다림(심은하)의 짧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렸다. 「접속」 「편지」에 이어 멜로드라마 흥행조류를 이어갈 수 있을지가 또하나의 관심거리다.
올 여름 「현상수배」의 흥행실패로 자존심을 구긴 박중훈이 새해 만회를 벼르는 작품은 이황림 감독의 「인연」이다. 「꼬리치는 남자」 이후 다시 박중훈, 김지호 커플이 만나 잔잔한 웃음을 전하는 영화다. 세련된 플레이보이 지훈(박중훈)과 까탈스럽고 콧대 높은 양희(김지호)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이로 보인다.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가볍게 풀어놓았다.
서극 감독의 「천녀유혼」이 애니메이션으로 변해 한국영화팬을 다시 찾아왔다. 효능영화제작사가 수입해 1일을 기점으로 배급한 이 영화는 홍콩의 SF전문 영화사인 전영공작실과 신시각특기공작실이 총 4년간 기획, 제작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다. 1천6백만달러 이상을 들여 애니메이션 특수효과용 컴퓨터를 이용해 만들어낸 입체감 있는 배경화면이 기존 셀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벗어나는 효과를 보여준다. 피아노줄에 배우를 매달아 하늘을 날게 했던 서극 감독의 상상력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더욱 자유롭게 표현됐다.
세계 유명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란영화 2편도 1일 함께 개봉된다.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국내팬들에게 공개상영됐고 98년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출품된 모센 마크 말바프 감독의 「가베」와 9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향기」다. 특히 「체리향기」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우정, 「올리브나무 사이로」의 사랑에 이어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키아로스타미의 역작이다.
이외에도 할리우드가 겨울을 겨냥해 내놓은 영화들이 적지않은 관객을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로빈 윌리엄스와 날아다니는 고무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가족용 오락영화 「플러버」를 비롯해 대형 스타인 브루스 윌리스와 리처드 기어가 맞상대하는 액션영화 「자칼」, 드림웍스SKG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해 인종간 갈등을 그린 영화 「아미스타드」,역시 인기배우인 알 파치노가 악마로 등장해 젊은 변호사인 키아누 리브스를 야망과 배신의 세계에 빠뜨리는 「데블스 에드버킷」 등이 새해 벽두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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