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리… 기운 내! 어디 한두 번이야. 회사생활하다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거야. 어쩌겠어. 참아.』
이 대리는 침통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박 대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그러나 이게 어디 쉽게 기분이 풀릴 일이던가.
요는 이렇다. PC통신을 즐기다 보니 멀지 않은 미래에 화상 채팅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감한 박 대리는 몇 일전 회식 자리에서 그 내용을 담은 열변을 토했었다.
그 당시, 이 대리를 비롯 다른 직원들이 맞장구를 쳐줄 때 유독 직속 상관인 김 과장만 가당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박 대리의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박 대리가 있는 개발팀으로 새로운 개발 기획안이 떨어졌다. 정보통신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PC통신과 인터넷 시대에 한 획을 그을 화상통신을 위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선점하라는 내용이다. 암암리에 돌고 있는 소문에 의하면 회식이 있던 다음날 김 과장은 기획서를 제출했고 그 덕에 이번 인사이동에서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디지털 카메라 개발을 위한 TFT(테스크포스팀)를 구성하게 될 것이라는 후문이다.
우울한 기분을 어쩌지 못한 박 대리는 침통한 표정으로 이른 귀가를 했지만 편히 쉴 수 없었다. 담배만 뻑뻑 피워대던 박 대리는 통신 친구들이나 만나 볼 요량으로 채팅실을 찾았다. 이제는 제법 능숙한 솜씨로 마음에 드는 대화실을 찾는 박 대리의 눈에 「고독한 직장인의 방」이라는 대화실을 발견했다.
외로운늑대> 안녕하십니까! 불꽃남자님!
불꽃남자> 반갑습니다. 이거 쓸쓸한 밤입니다.
고독한낙지> 그러게 무척 흐느적거리는 밤이군요.
달빛고독남> 허허! 다들 우울한 직장인이군요.
박 대리와 함께 그 방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하나 둘 직장 생활의 고충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밟고 밟히는 남자들… 밀리지 않으려면 어떻게해서든 다른 사람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그들의 고독한 현실이었다.
고독한낙지> 이거 우리 이러고 있지 말고 소주라도 한잔해볼까요?
불꽃남자> 아하! 번개 말입니까?
외로운늑대> 좋아요~ 좋아요~ 쐬주~~ 캬아아~
달빛고독남> 음. 지금 나가면 마누라쟁이 짜증낼텐데… 에라~ 모르겠다! 저도 가겠습니다.
난생 처음 번개 모임에 나가게 된 박 대리의 마음은 설레이고 있었다. 과부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자신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모임에 나오기로 한 그 사람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약속 장소에 모인 패잔병(?)들… 간략히 자기 소개를 하고 악수를 교환한 뒤 가까운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오가는 술잔 속에 싹트는 우정이란 말이 있듯 비록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쉽게 하나가 되고 있었다.
박 대리는 그날 저녁 그야말로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4명의 남자들은 부어라 마셔라장소를 서너 번 옮겨가며 새벽 늦게까지 헤어질줄 몰랐고 오히려 짧은 만남을 아쉬워했다.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신 박 대리가 쓰린 속을 문지르며 잠에서 깬 시각은 아침 8시. 지각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시계 바늘이 9시를 막 지나칠때쯤 간신히 회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동료 직원들이 박 대리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모르고 당황하는 박 대리 앞에 이 대리가 다가 왔다.
『어이, 박 대리! 축하하네!』 『무슨 소리야? 아침부터…』
『하하하… 곧 알게 되겠지 뭐… 어서 상무님에게 가봐. 아침 일찍부터 찾으셨어.』
궁금함을 안고 대머리 상무님을 찾아간 박 대리… 그러나 상무님조차도 박 대리를 웃으며 맞이했다.
『허허… 박 대리 왔는가?』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허허허… 괜찮네. 다름이 아니고 자네가 디지털 카메라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그래서말인데, 이번 테스크포스팀의 팀장을 자네가 맡아주게. 김 과장을 도와서 말이야. 물론 다음 승진 심사 때 자네도 좋은 일이 있을 게야. 허허허…』
『사… 상무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이 동그래진 박 대리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90도로 구부려 인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동료 직원들의 쏟아지는 축하 속에서 또 한번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황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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