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소설방] 불꽃남자 박대리의 PC통신 탐험기

박 대리는 올해 서른 두살 총각 사원. 그에게 소원이 있다면 입사 동기 이 대리처럼 통신 베테랑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대리는 통신에서 알게 된 어여쁜 아가씨와 목하 열애중이었으니…. 지금까지 PC통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내온 자신의 무지함이 늘 한심스럽기만 했다.

벼르고 별러 드디어 PC통신에 가입한 박 대리. 통신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접속방법 등 기본적인 지식을 이 대리에게 사사(?)받기에 이르렀다. 물론 공짜로 가르쳐줄 이 대리가 아니다. 근사한 단란주점에 데려가 양주 한 병에 고급 안주 두 접시를 수강료조로 대접해야만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박 대리는 제법 신중을 기해 만든 ID인 「불꽃남자」로 PC통신의 꽃이라는 채팅실을 찾아 나서는데…. 갈 곳 잃은 기러기처럼 대화실만 서성이던 박 대리에게 누군가 메모를 보내왔다.

<메모>불꽃여인:안녕하세요? 저랑 대화명이 비슷하시네요. 아까부터 대기실에 계신 것을 보니 초보신가봐요? 괜찮다면 저랑 대화나눠요.「/J 10」 하세요.

불꽃여인:불꽃남자님은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결혼은?

불꽃남자:하하! 아직 미혼입니다. 애인도 없습니다!

불꽃여인:어머머! 정말이세요? 어휴~! 그럼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내시려구요?

불꽃남자:글쎄,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불꽃여인:혹시… 실례지만, 성생활에 무슨 문제라도…? 호호호!

불꽃남자:예에? 무슨 말씀! 전 절대로 고개 숙인 남자는 아닙니다!

불꽃여인:호호호~! 그냥 농담이었어요. 호호~.

불꽃여인:정말 애인 없어요? 안 믿어지는데요.

불꽃남자:정말입니다. 아직 사랑 한번 못해봤습니다.

불꽃여인:정말 불행하시네요. 불꽃남자님은 듬직해 보이고 선량해 보이시는데. 여자들이 눈이 삐었지.

불꽃남자: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박 대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불꽃여인이 자신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PC통신을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며 이 대리에게 투자한 술값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꽃여인:저도 애인이 없어서 늘 외로웠어요.

불꽃남자:어이쿠. 동병상련이군요.

불꽃여인:훌쩍훌쩍 정말 외로워요. 이제 누군가의 사람이 되고 싶어요.

불꽃남자:괜찮으시다면… 저와 이 겨울을 따스하게 지내보지 않으시렵니까?

불꽃여인:흐윽. 그래도 될까요? 정말 너무외롭고 쓸쓸해요.

불꽃남자:저 이래봬도 괜찮은 남자입니다. 믿어주세요!

박 대리는 지난번 선거 유세장에서 모모 후보가 썼던 「믿어주세요!」를 연발하며 불꽃여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애를 썼다.

불꽃여인:저… 실은요. 정말 심각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불꽃남자:네에?

불꽃여인:들어주실 거죠? 정말… 불꽃남자님의 어진 마음을 믿고 고백하려고 하는 건데요.

박 대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불꽃여인이 아픈 과거를 자신에게 고백하려는 것이라고. 까짓 과거가 무슨 문제겠는가. 현재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불꽃여인:사실은요… 어휴~! 정말 어렵네. 음…

불꽃남자:말씀하십시오.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꽃여인:그럼 용기를 내서 고백할게요. 저어… 저어….

불꽃남자:…….

불꽃여인:박 대리! 나야 나! 나 이 대리야! 하하하!

불꽃여인:속았지? 메롱~!

화끈화끈! 쿵!쿵!쿵! 박 대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망할 이 대리 자식! 내일 아침 출근하면 절대로 가만 안둘 테다! 그러나 다음날, 박 대리는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을 곁눈질하며 킥킥거리는 직원들의 뜨거운 눈총 때문에.

<황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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