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새가전 뉴리더 (37);LG 조리기기 OBU설계실 한국팀

LG전자의 김석태(金錫泰) 책임연구원(조리기기 OBU설계실 한국팀장)에게 있어서 97년 5월 12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3년 동안의 연구 결실이 세상에 처음 선보인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생산라인에서 나온 제품은 바로 「온도프리 전자레인지」. 사용자가 마음대로 온도를 조절하는 전자레인지다.

『14년의 연구 생활에서 가장 기분이 좋았습니다.』 책임연구원은 그 날의 감격을 이렇게 말했다.

「온도프리 전자레인지」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 태어난 제품이다.

하마터면 영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다. 두번이나 개발이 중단됐다.

이 제품은 또 기술개발에 성공한 후에도 설계실 연구원들을 애태우게 만들었다.

보통 한번이면 되는 시험생산을 이 제품은 세번이나 거쳤다. 지난해말 상품화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실패할 가능성 때문에 대체모델도 동시에 개발해야만 했던 제품이다.

이 제품이 이토록 어려운 상품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은 지금까지 전자레인지에서는 적용되지 않은 고난이도의 기술 때문이다. 적외선 방식의 반도체 센서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숱한 선진 전자레인지업체들이 이 기술을 상품화하려다가 실패했다. 일본 산요사가 유일하게 실용화에 성공했지만 기술수준이나 부품원가의 경쟁력에서 모두 LG전자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적외선 방식의 반도체 센서는 그동안 용광로의 온도측정 등에 쓰였다. 이 센서를 전자레인지라는 작은 제품에 적용하려면 센서기술뿐만 아니라 고도의 반도체설계기술을 필요로 한다.

「온도프리 전자레인지」설계팀은 이러한 첨단 기술을 LG종합기술원의 소자재료연구소와 함께 개발했다. 또 그 알고리듬에 대해서는 LG전자 리빙시스템연구소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렇지만 정작 적외선 반도체센서와 그 알고리듬의 개발보다 힘들었던 것은 제품 설계다. 벤치마킹할 대상도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석태 책임연구원을 비롯한 8명의 한국팀 연구원들은 이를 위해 수많은 실험을 반복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 그 원인을 찾느라고 밤샘 연구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연구원들을 지치게 만든 것은 성공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는 주위의 시선이었다.

정식 프로젝트로 정해지지 못해 회사의 대대적인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룹연구소와 관계 연구소쪽으로부터의 지원도 연구원들이 알음으로 얻어낸 것이다.

설계팀의 연구원들은 「할거냐 말거냐」보다는 「될까 안될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설계팀 연구원들은 지난해말 상용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주위의 시선은 곧 탄성으로 바뀌었다. 설계실을 찾는 LG전자와 관계사의 고위 임원들 발길이 부쩍 잦아졌고 그룹내에서도 LG전자의 자랑거리로 떠올랐다.

정작 설계팀 사람들은 이러한 바깥에서의 평가보다 선진업체들보다 뒤늦게 시작하고도 가장 먼저 성공했다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제 시작일 뿐 아직도 개선점이 많다고 겸손해 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음식물의 다양한 조건에서 온도 측정의 편차를 줄이는 기술적인 보완에 주력할 계획이다.

자신들이 만든 기술이 세계 전자레인지 시장을 석권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 LG전자 창원공장에 가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신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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