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가 제작비 체중감량을 시작했다.최근 여름, 가을시즌을 겨냥하여 개봉을 준비중인몇 편의 한국영화들이 예전에 찾아볼 수 없던 효율적인 제작시스템 구축을 통한 「제작비 현실화」에 나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한국영화의 연속적인 흥행실패로 대기업 및 창투사들의 투자의지가 꺾이면서영화계로 부터 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오는 26일 서울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인 「넘버.3」(감독 송능한)는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정해진 촬영일정과 예산지키기를 실현해,보통 3∼4개월이 걸려온 한국영화 촬영기간을 8주로 크게 줄였다.
이 영화의 제작사인 프리시네마는 촬영전에 시나리오, 콘티, 장소섭외를 1백% 완료, 2차 편집후 부족한 부분을 한 차례 재촬영한 것을 빼고는 당초 계획했던 30회의 촬영횟수대로 소화해냈다.예산의 경우에도 제작완료까지 10억5천만원(마케팅비 제외)을 사용, 당초 계획했던 총 제작비 15억원을 넘지않아 홍보 및 마케팅에서 여유를 갖게 됐다.
이달 말까지 현상, 녹음, 편집을 완료할 예정인 제이콤의 「억수탕」(감독 곽경택)은 그야말로 자린고비식 제작을 하고 있다. 곽 감독이 『정해진 예산과 시간내에 작업하겠다』고 공언,현재 추가경비 사용없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곽 감독은 순수 제작비인 6억여원내에서 제작을 완료하기 위해 4회에 걸친 시나리오 수정,3백60개에 달하는 콘티작업,장비섭외 등을 완결한 상태에서 촬영에 돌입했다. 촬영현장에서도 경비절감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 슛(shoot)이전의 촬영테스트는 물론 연기자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현장리허설을 여러 차례 되풀이 했다. 특히 황기석 촬영감독(뉴욕대)을 비롯한 9명의 해외 스탭진과 작업일수 및 시간에 따라 계약한 점도 주목할 만한 거품빼기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달초 피카디리에서 개봉될 예정인 「할렐루야」(신승수 감독)는 1년 6개월에 걸친 사전작업에 힘입어 올해 4월 7일부터 6월 6일 사이에 단 20회를 촬영하는 것으로 제작을마무리했다. 이 영화는 마이클 잭슨의 한국공연을 성사시키면서 유명해진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으로 (주)일신창투가 15억원을 투자했다.
일신의 풍부한 영화투자 경험과 태원의 기획력이 맞물리면서 박중훈, 이경영, 최종원, 최지우, 이휘재, 고소영, 이혜영, 조춘, 박철 등 스타급 배우들을 다수 출연시켰음에도 제작비는 15억원에 머물렀다.
추석개봉을 바라고 있는 「현상수배」(정흥순 감독)의 경우에는 해외프로젝트였음에도 통상적인 국내제작비 수준인 16억원을 사용한 점이 돋보인다. 제작사인 씨네2000은 당초의 촬영장소가 미국 뉴욕이었던 것을 촬영장 입지조건이 좋고 장비대여료가 저렴한 호주로 선회,제작비를절감했다.
이와 함께 씨네2000측은 현지 출연자와 스탭들의 촬영당일 일정을 시, 분까지 명기해 통제하는 한편 감독에게 1일 필름사용량, 현재 사용량, 책정된 필름량을 매일 통보하는등 제작과정에서도 경비절감을 위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특히 사후작업인 편집을 촬영과정에 연출진의 몫으로 포함시킴으로써 필름낭비는 물론 편집자에 대한 인건비를 줄였다.
이같은 노력들은 「영화규모에 따라 합리적인 예산짜기 및 집행을 통해 촬영과정에서 발생하는 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기존의 한국영화 제작관행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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