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멀티시대의 특허전략

LG전자 평택연구소 멀티미디어 특허경영팀 책임연구원 金晶中

최근들어 멀티미디어라는 말처럼 자주 쓰이는 말도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개념 정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서로 다른 포맷과 미디어를 연결하여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의 집합」 정도로 통용된다. 이러한 멀티미디어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과거 아날로그 오디오 제품처럼 수십 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사람만이 최고의 제품을 설계할 수 있었던 시대와 달리 이제는 독창적이고 논리적인 개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훌륭한 음질의 디지털 오디오 제품을 설계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디지털 기술의 특성상 논리적 모순만 없다면 최적의 특성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멀티미디어 시대는 경험이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나 동일한 선에 서게 해주었다. 비록 우리에게는 풍부한 경험도, 막대한 연구개발비도 없지만 우리의 머리 속에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잠재되어 있기에 지금까지 우리를 옭아매던 기술종속의 굴레에서 단번에 벗어나 기라성 같은 선진업체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지적재산 분야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멀티미디어의 「멀티」에 걸맞은 다양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본래 지적재산제도란 특정소자들이 결합된 구성이 아니라 그 구성에 내재된 「기술적 사상」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멀티미디어시대의 특허야말로 기술적 경험의 질보다는 기술적 아이디어의 질에 의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멀티미디어시대의 특허전략 포인트인 것이다.

미국의 GE/RCA 자회사 중에 걸모(GERLMO, 최근 RTL로 변경)라는 특허경영회사가 있다. 연구원의 수백명과 특허전문가들로 구성된 이 회사는 자체제품 개발없이 매년 수천건의 특허를 출원해서 연간 1억달러 이상의 특허 로열티를 벌어들이고 있다.

특허는 제품개발의 부산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으로 만들어내는 것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편 최근 3,4년간 멀티미디어를 둘러싼 선진업체의 동향을 보면 기존 기술종속구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표준화 또는 규격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공식적인 규격」으로 제정되기 몇 년 전부터 몇몇 핵심 특허를 보유한 업체와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는 타이틀업체들이 전략적으로 제휴, 「사실상의 규격(De Facto Standard)」을 만들어 미처 제품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고율의 로열티를 책정함으로써 후발업체의 시장진입을 아예 봉쇄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MPEG이 그렇고 DVD 또한 이런 과정을 밟고 있다. 결국 규격화문제 또한 특허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그 당시 누가 얼마나 많은 핵심특허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규격 패밀리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당장에는 규격패밀리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지만 이제라도 우리의 특허 엔지니어들이 특허관리에 안주하지 말고 특허경영의 주체적 역량을 키워서 하나의 아이디어로부터 수십 건의 특허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른바 「특허개발」 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내벤처제도나 「코어 인벤터(Core­Inventor)」제도를 통해 새로운 특허를 개발하고 특허인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또한 길목을 지키는 개량특허를 꾸준히 개발하고 선진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사실상의 규격을 만들어 가면서 규격이 새로 제정될 때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연구원 머리 속에서 잠재된 아이디어를 특허화할 뿐만아니라 과감하게 제품화시킬 수 있는 조직적인 특허활용 활동을 통해 전략특허로 만들어 간다면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특허료 수익만으로 독립적인 운용이 가능한 회사가 탄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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