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와 학계, 일부 시민단체들은 청소년보호법이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에 의한 옥상옥의 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보호법이 장기적인 청소년 보호, 육성책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규제, 단속에만 치중한 나머지, 관련부처, 단체 및 각 법률간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분석에서 비롯되고 있다.
고려대 김준호(사회학과) 교수는 『청소년이 TV폭력물이나 음란물에 노출된 후 그 영향으로 비행을 저지른다는 가정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했다』며 『청소년 비행이 사회문제화되자 단속강화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존 법률들만으로도 단속은 충분하다』며 『새로운 법률제정을 위해 쏟아붓는 시간과 경제력을 실질적인 청소년 보호, 육성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청소년문화연구소 김옥순 실장(정보통신윤리위원회 심의위원)은 『컴퓨터통신을 통한 음란물의 배포가 쉽고 광범위해진 상황에서 산업화시대에나 어울리는 규제, 단속수단을 규정한 청소년보호법은 가치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청소년의 자정능력 배양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했다. 흥사단 청소년연구원 김영진 부원장도 『청소년보호법이 각 민간단체의 청소년 보호역할과 능력, 실적들을 무시하고 있다』며 시민단체와의 공조강화를 촉구했다.
이렇듯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원론적인 반대들이 분출하자, 최근 주무부서인 문화체육부 청소년정책실은 『동법 전면시행까지 2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홍보부족으로 동법 시행에 대한 일반의 인지도가 떨어져 혼란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이같은 유예기간 설정에 대해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비난의 예봉을 피해가기 위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에 나서줄 것을 바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법이 시행되자마자 개정 및 폐지를 논하는 것은 또 다른 시간적, 경제적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지적이다.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비난도 방법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며 근본취지가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것은 아님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일단은 법시행에 따라 나타날 모순점들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에 충실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법개정 및 폐지는 차후에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다. 당장은 「청소년보호」라는 공통된 과제를 놓고 민, 관이 머리를 맞댈 때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보호운동은 지난 88년 각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하는 「향락문화추방운동」이 시작되면서 그 체계와 범위가 구체화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시에는 청소년 유해환경을 현상적으로만 인식, 도덕성에 호소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운동과정에서 청소년 유해환경이 우리사회의 복잡한 경제, 사회, 문화구조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청소년보호운동에 과학성이 가미되기 시작했다. 이후 유력 청소년단체 및 사회단체들의 활발한 캠페인 전개, 관련 학계에서의 심층적 연구, 정부의 유흥업소 심야영업 제한조치 및 유해환경감시단 지원, 관련업계의 자정노력 등이 잇따랐다.
이러한 그동안의 노력들을 집대성하고 결점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이 곧 청소년보호법 개선책과 연계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문화상품에 대한 민간의 자율규제」라는 시대조류에 역행하면서까지 청소년보호법을 제정한 것은 그동안의 법적, 私(민간)적 노력들이 청소년 유해환경을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따라서 규제, 단속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각도의 논의와 청소년보호, 육성책 마련에 여력을 집중해야만 할 것이다.
중앙대 최윤진(청소년학과) 교수는 『기존 청소년 관련 법률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부처간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상호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청소년보호법의 세부적인 조항들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이미 법시행에 돌입한 이상, 정부부처간 및 민간의 상호협조를 통해 제대로 시행하는 데 힘쓰는 한편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들을 수정, 보완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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