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초 전자3사 대표가 한자리에서 만났을 때 전자업계 전체가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전자3사 대표회동은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고 무엇 때문에,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하는 등등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정작 전자3사는 이 회동 자체를 쉬쉬했을 뿐 아니라 만난 이유에 대해서도 단순한 저녁식사 모임쯤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가전제품 가격인하 자제나 유통시장 개방후 나타나고 있는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얘기가 오갈 경우 자칫 「담합」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 모임은 함께 식사하는 선에서 더 이상 발전되지 않았다. 3명의 대표 이외에는 아무도 배석시키지 않은 비공식 회합이어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회동후 관련 임원이나 실무부서에 내린 지시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자는 구체적인 논의의 자리는 아니었던 것같다. 다만 앞으로도 이러한 모임을 갖자는 데 뜻을 같이함으로써 일말의 기대를 남겼다.
사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전자업계간 중요한 차이점으로 「경쟁속의 공조」를 꼽는 이들이 많다. 일본 기업들은 국내외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도 외국업체가 자국시장에 진입하거나 해외시장에서 외국 브랜드가 강자로 부상할 경우 즉각적으로 힘을 합친다. 국산 전자제품 및 부품이 쉽사리 일본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전자업계는 「모래알」에 자주 비유되고 있다. 특히 전자3사의 경우 공조는 고사하고 제살깎는 식의 경쟁이나 상대방을 절하시키는 행위라도 자제했으면 하는 게 업계의 바람이다.
예를 들어 전자3사 중 한 업체가 어떤 시장에서 부상하는 듯하면 다른 업체는 이에 뒤질세라 무이자 할부판매와 바이어에 대한 각종 할인혜택 및 대금 결제조건 완화 등 그 시장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는 경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덤핑판매(공급)라는 극단적인 비즈니스를 불사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북미와 유럽연합(EU) 같은 선진시장에서 이러한 출혈경쟁을 일 삼았다면 요즘은 동남아와 독립국가연합(CIS), 중남미 등 신흥시장으로 자리를 옮아가는 듯한 양상을 띠고 있을 뿐이다.
이른바 「물태우기」로 불리는 상대 회사에 대한 평가절하나 헐뜯기는 아직도 자주 나타난다. 특히 신제품 출시 때면 상대방 회사가 언제 발표하느냐에 서로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미리 선수치는 경우는 관행처럼 돼버렸다. 얼마전에도 24배속 CD롬드라이브 출시를 놓고 상대 회사보다 먼저 발표, 서로 헐뜯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 상대 회사의 문제점이 노출되기라도 하면 이를 놓치지 않고 일선 판매현장의 광고성 자료로까지 활용하는 게 전자업계를 이끌어가는 리딩3사의 현실이다.
이와 관련, 전자산업진흥회의 박재린 상무는 『전자3사가 스스로는 사업구조의 고도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쏟고 있지만 공조를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선 서로 이해가 엇갈려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그 대표적인 사례로 업계 공동의 표준화, 공용화가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했다.
더욱 안따까운 것은 전자3사의 최고경영자간에 앞으로 협력체제를 다져나가기로 합의한다 해도 오랜 기간 만연된 이러한 공조부재 현상이 쉽게 개선될 가능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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