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정보화 발목잡는 정치현실

모든 나라들이 정보화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정보화는 국가경쟁력과 문화수준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정부는 정보화를 위해 정보산업에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그 이용 확산을 위한 환경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보화추진계획이 입안되고 이 계획에 따라 정부 부처마다 세부계획을 세워 이를 추진하고 있다. 주관부처인 정보통신부는 물론 관련부처와 업계, 학계, 연구계가 모두 나름대로 정보화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 주소와 장래를 가늠할 정보화 환경은 척박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산업의 개방과 함께 국가간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초경계 정보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추세다. 국내산업의 보호육성이라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문화주권 보호차원에서도 정보화는 절실한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이같은 사실을 모두 입으로는 말하고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한보관련 검찰수사, 국회청문회, 현철씨 사건에 이어 이제는 아직도 반년이나 넘게 남은 대통령선거 열기로 날을 새우고 있다. 정보화는 관심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를 앞서가고 있는 미, 일은 첨단기술과 거대한 국력으로 우리의 정보산업관련 시장을 점령하고 있고 경쟁대열의 중진국들조차 우리의 시장을 침식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화에 앞서가려면 정부의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나 그 기반이 되는 환경조성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계획들은 지금까지도 무성했으나 실제로는 책임자의 불감증으로 인해 제대로 진행된 적이 거의 없다.

특히 정보화 환경의 척도나 다름없는 법과 제도의 정비가 지지부진하다. 정보통신부가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한 9개 부처 33개 법과 관련규정이 미결인 상태로 남아 있다. 정보화 불감증의 심화로 우리의 경쟁력은 더욱 낙후되고 있다.

인허가 신고사항의 공고, 접수, 발표 및 민원을 컴퓨터통신으로 처리하려면 행정규제 및 민원사무기본법을 고쳐야 한다. 공무원의 재택근무가 가능하려면 국가공무원법이 개정돼야 한다. 정보통신 전문인력을 특별 채용하려면 역시 국가공무원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컴퓨터통신을 통한 원격수업이 인정을 받으려면 교육법과 그 시행령 중 출석관련 규정이 정비돼야 한다. 원격진료 역시 처리처방전이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의료법이 개정돼야 한다.

이밖에도 많은 법과 제도의 개정 및 보완이 정보통신부에 의해 지적됐으나 진전이 없다.

정치가 정보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통합방송법을 들 수 있다. 유예인지, 폐기인지 1년째 방치되고 있는 통합방송법은 재정지연으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위성수명 손실은 차치하고라도 디지털위성산업의 향방조차 오리무중이어서 산업이 방황하고 있다.

정보화를 주도하는 당국자들은 이에 대한 해명과 책임소재를 밝혀야 한다.

대기업과 언론사의 위성방송사업 참여에 관한 찬반논란이나 이와 관련해 공보처와 정보통신부 간의 견해차가 이 법이 빛을 못보고 있는 이유의 전부인지 알고 싶다.

정보불감증의 퇴치가 높은 곳에서부터 진행돼 진정 그 중요성이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를 초월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인식되고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세계 제일(월드 베스트)만이 살아남는다는 경쟁원리는 21세기 정보사회에서 기업과 상품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초경계 정보흐름의 인터넷시대에 세계 제일의 기술과 베스트 서비스가 우리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한 심각한 순간이다.

「정보의 주권상실」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으로 그 국가적, 민족적 피해는 과거의 「영토 침탈」이 가져다 준 것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보화의 성공여부는 21세기 우리나라가 선진대열에 진입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자본과 기술력의 제약 속에서 선진국을 추월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정보화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통해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 실천을 약속하는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盧相國 전자신문 편집인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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