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위기에 처한 인각사를 구하자.」
신세대 가수들의 표절문제부터 정부의 통신관련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의견을 모아 이를 관철, 새로운 「사이버 압력단체」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컴퓨터통신 토론마당 이용자들이 이번에는 「문화재 살리기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천리안,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등 국내 주요 컴퓨터통신 네티즌들은 최근 일제히 「인각사를 구하자」는 토론마당을 개설하고 이에 필요한 서명작업에 돌입했다.
네티즌들에 따르면 인각사는 경북 군위에 있는 자그마한 산사로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하고 열반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곳이다. 이 인각사가 별다른 대책 없이 최근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댐(저수지)건설 프로젝트로 수몰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살리기 위한 네티즌들의 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각 통신망 토론장은 인각사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반응이 너무 뜨겁자 급기야 「대책없는 저수지 건설」을 반대하는 서명작업에 나섰고 각 통신망에서 집계한 서명내용은 관계기관에 전달한다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현재까지 나타난 네티즌들의 의견은 「반대」가 압도적이다. 물론 「수몰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지만 대구시민의 맑은 물 취수를 위한 저수지 건설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해야 하고 지방정부 나름의 검토작업도 있었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가끔 등장한다.
그러나 반대서명에 참여하는 네티즌이 늘어나면서 인각사에 대한 역사적 의미, 정부의 무원칙한 개발정책에 대한 각종 비판자료가 올라오고 있다. 지리산 뱀사골 계곡과 신라 구산선문의 실상사 등 개발계획으로 사라질 뻔했던 문화재를 다시 살린 사례 등도 배포되고 있다. 반대논리가 갈수록 강화돼 적어도 사이버 공간에서는 신중론이 설 땅은 거의 없다.
네티즌들의 「인각사 살리기」 운동은 이제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이 「종교적 이유」에서 비롯했다고 여기는 일부의 시선을 단호히 거부하는 「순수성」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처음 시작된 하이텔에서는 대구의 기독교인이 중심이 됐고 나우누리에서는 연예인 팬클럽까지 가세했으며 서명자들은 전국 일원에 산재해 있다. 이번 캠페인이 주목되는 것은 컴퓨터 통신망이 이미 확고한 사이버 압력단체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제도권 언론(네티즌들의 표현)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취재, 기사작성, 편집 등을 독점해 왔지만 컴퓨터통신은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열린 공간, 열린 매체로 기능한다. 이 때문에 개인적인 내용이나 극히 한정된 사람들만의 화제도 많지만 이처럼 일반인들까지 기꺼이 참여하는 토픽을 제기, 사회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사이버 언론」으로 불리는 컴퓨터통신은 이미 그 위력을 여러 차례 검증받았다. 가수들의 표절문제를 최초로 정면에서 제기, 가요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이승희라는 누드모델을 어느날 갑자기 「신데렐라」로 만들기도 했다.
음란물을 뿌리뽑겠다는 전제아래 개인의 통신내용까지 규제할 우려가 있는 정부의 법안에 대해 서명 등 조직적 반대운동을 통해 이를 철회시켰고 인터넷 정보검색사 시험의 상업성을 지적, 상당한 성과를 얻어낸 바 있다.
제도언론이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까지도 사이버 공간에서 조명하는 네티즌들의 행동 때문에 새로운 언론으로서의 컴퓨터통신은 그 위상과 역할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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