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아버지

장길수 감독의 <아버지>는 1백60만부나 팔린 김정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이 소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그칠 줄 모르고, 영화가 상영되는 시점 또한 「사랑과 감사의 달」인 5월인 등다 계산된 결과이겠지만흥행에 유리한 조건은 모두 갖췄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 자체에 있다.

장길수의 <아버지>는 혹독하게 말해 2중,3중의 실패작이다. 영화 <아버지>는 원작의 의미를 재현하는 데, 원작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관객으로부터 눈물을 자아내는 데 참담할 정도로 실패하고 있다.그 이유를 여러 각도로 찾아보아야 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소설 <아버지>가 초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즉 통속적이지만 감동을 자아내는 비결을 장길수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영화 팜플렛에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단절된 가족들간의 사랑과 화해를 따뜻하게 그려내려 했다」는 감독의 제작의도가 실려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있는 듯하다.소설 <아버지>는 「가족의 사랑과 화해」를 그리지 않았다. 이 소설은 오히려 가족(아내,자식들)의 때늦은 사랑으로도 구하지 못한 한 남자(남편,아버지)의 깊은 외로움을 드러내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화해」를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이미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앓고 있는 한 남자의 억울함」을 놓쳐서는 안된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한정수라는 인물이 구체적으로 직면하게 된 억울함,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찬란했던 부권(父權)으로부터 무장해제당한 채 나날이 왜소해지면서 느끼는 착잡함을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설 <아버지>로부터 받게되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억울함에 대한 공감이다. 직장,아내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마침내는 자식에게조차 외면당해 밖으로 떠도는 한정수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자신의 모습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아버지>는 잘 만들어졌다면 중년과 청소년들을 아주 쉽게 영화관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땅의 생기없는 아버지들을 자진 동원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이 점에서 장길수의 실패는 비단 영화적 실패가 아닌 원작소설에 대한 각색의 실패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아버지>의 관객들이 대개는 소설을 통해 1차로 자극을 받은 사람들이어서 아주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으로 이끌지 못한 점이유감스럽다.

이제 장길수는 왜 자신의 최근 영화들이 번번히 실패하고 있는 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저마다 뛰어난 배우들로 하여금 하나같이 과잉연기를 하게끔 만들고 불협화음이 일게 했던 자신의 연출을 세밀하게 점검해야 할 때다.

<채명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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