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10)

가끔씩 벌어지는 굿판을 혜경은 동네 어른들 틈에 끼어들어 구경하곤 했다. 무당. 무엇에 홀린 듯한 무당의 눈에서 작은 불빛이 이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덩덩 장구소리, 꽹과리 소리에 맞춰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가벼운 버선발도 무척이나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신명을 함께 느끼는 것처럼 신이 나기도 했다.

무당의 딸, 혜경은 엄마를 쫓아다니는 같은 또래의 무당 딸과 어렵게 말을 걸어 사귈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 멀고 혜경의 집보다 더 산골짝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집까지 드나들며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무당이 늘 치성을 드리는 사당에도 드나들 수 있었다. 초가집 사당. 이엉을 잇지 않은 지붕은 깊은 골이 파지고 군데군데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늘 향내가 풍기고, 원색의 그림과 여러 모양의 고깔이 걸려져 있는 사당에 다른 아이들은 무서워 근처에도 못 갔지만 혜경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혜경은 벽에 걸린 원색의 무속화에서 풍기는 황홀감과 함께 그 뒤에 가려진 슬픔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황홀과 슬픔. 은은히 깔려 있는 향냄새가 그 분위기를 더 깊게 했다. 그때마다 혜경은 원인 모를 황홀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곤 했었다.

그 사당에 어느 날 불이 난 것이었다. 바로 혜경 때문이었다.

혜경은 그 사당이 불에 타던 모습을 아직도 그 무엇보다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무당의 딸과 혜경이 초겨울 아궁이에 불을 때다 벌인 불장난 때문에 불이 났기 때문이었다.

부지깽이. 아직도 혜경은 그 부지깽이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알맞게 굵은 참나무 가지였다. 솔잎과 잔가지, 장작 등을 아궁이에 넣고 불을 땔 때 타 나오는 불을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기 위해 쓰는 부지깽이는 너무 가늘면 쉽게 불이 붙어 오래 쓸 수가 없고, 너무 굵으면 무거워 불편했다. 혜경과 무당의 딸은 그 불붙은 부지깽이로 서로 장난을 치다 불을 낸 것이다. 불이 나무더미에 옮겨 붙어 순식간에 초가 사당 전체에 불이 붙어 버린 것이었다.

깊은 산골에 소방서도 있을리 없었다. 주변 사람들 몇이 양동이며, 세숫대야, 바가지 등으로 우물물을 길어 지붕에 끼얹어 보았으나 그 불길을 잡기에는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불, 혜경은 그 사당을 태우는 불꽃을 보면서도 황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슬픔도 느낄 수 있었다. 부지깽이를 손에 잡은 채 황홀감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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