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때쯤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첨단 반도체기술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국제고체회로회의(International Solid State Circuits Conference:ISSCC)가 열린다. 올해도 이곳에서는 지난 6일부터 3일 동안 세계 각국에서 약 3천명의 전문 연구요원들이 참가, 논문 및 제품발표, 토론 등의 활동을 벌여 최첨단기술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기술동향을 파악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멀티미디어」라는 주제아래 7개 분과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는 최신기술에 관한 1백64건의 논문과 기술이 발표됐다. 이 가운데 구미지역의 발표가 절반에 가까운 45%를 차지했고 일본이 아시아지역 논문의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44편을 발표했다. 또 홍콩과 호주가 처음으로 기술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을 비롯한 몇개 관련업체들이 참가, 새로 개발한 기술을 공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제가 말해주듯이 이번 회의에서 발표된 주요 기술 및 제품은 멀티미디어 기능을 가진 MMX칩, 47분간의 비디오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4GD램, MPEG2 인코더회로를 원칩화한 대규모 집적회로(LSI) 등 멀티미디어관련 마이크로프로세서 및 메모리로 이 분야 제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반영했다.
인텔이 3백∼4백 클록주파수를 갖는 P6급 MMX칩을 발표했고 인텔 호환칩업체인 어드밴스트 마이크로디바이시스(AMD)는 8백80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시키고 2백의 클록주파수를 갖는 K6 MMX칩을 공개했는가 하면 디지털 이퀴프먼트사는 5백50∼6백 멀티미디어용 알파칩을 발표했다.
또 일본의 NEC는 4GD램, 소니, NEC, 네덜란드의 필립스는 3백만∼4백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화상압축용 칩을, NTT는 초저전압에서 작동하는 실리콘 온 인슐레이터(SOI) 웨이퍼 제조기술을 발표했다.
이번 ISSCC를 통해 우리는 세계 첨단 반도체기술의 발전추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구미, 일본업체들이 멀티미디어관련 반도체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사실이다. 또 하나 주목을 끄는 기술추세는 반도체칩의 저전력화로 현재 5V인 구동전압을 1V까지 낮추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시아지역에서 발표한 기술은 메모리분야의 비중이 높은 반면 미국에서 내놓은 제품은 마이크로프로세서분야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국가들이 아직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비롯한 비메모리분야에서는 약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ISSCC와 같은 국제기술 포럼에 대한 국내업체들의 참여도가 매년 높아지고 있는 것은 기술이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선 국내기업은 멀티미디어시대에 부응해 이와 관련된 반도체기술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비메모리 기술개발에 주력해 동남아시아 후발국들과의 격차를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나타났듯이 대만을 비롯한 홍콩, 말레이시아, 호주 등은 메모리분야에서 우리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분야의 기술개발에 게을리한다면 후발국가들이 머지않아 우리를 추월하리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내기업은 ISSCC와 같이 첨단기술 추세를 파악하는 동시에 우리의 기술을 공인받을 수 있는 국제무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구미 선진국들은 우리의 반도체 메모리분야 기술은 인정하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이 기술개발이나 제품홍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단기적인 상용화기술 개발과 더불어 미래 유망기술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올바로 예측해 장기적인 기술개발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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