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 과학기술력의 현주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지난 30여년 동안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과 민간기업의 기술개발 노력에 힘입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발표한 96년판 산업기술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GN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가 지난 94년말 현재 2.60%로 주요 선진국 수준인 2.5∼3.0% 수준에 도달하였고 투자규모면에서도 1백억달러에 이르러 세계 10위권 이내에 진입하였으며 연구원수도 10만명을 상회, 영국 및 프랑스 수준에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서는 지난해 과학기술의 세계화를 위한 국제기구의 가입 및 활동, 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아, 태경제협력기구(APEC) 과학기술각료회의의 서울 개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및 경제사회이사회의 이사국 선임 등 각종 국제활동은 분명히 과학기술의 세계화를 급진전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전략적 제휴와 글로벌 기술경영은 올들어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기업의 부설연구소도 정부의 기술개발자금 지원, 관세감면, 조세지원, 전문 연구원제도 등 각종 지원제도로 인해 국가 기술혁신의 주체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게 백서에서 밝힌 전망과 분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과연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였는지, 국제화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기업의 전략적 제휴물결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또 기업의 부설연구소가 실속있게 운영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백서가 최근 스위스의 한 유력기관이 발표한 96년 국제경쟁력 보고서를 인용해 비교분석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력 순위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우리나라는 비교대상 46개 국가 중 25위로 GNP순위 11위, 무역량 규모 12위보다 크게 뒤처져 있으며 GNP 대비 R&D투자비율 자체는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고 있으나 절대액에 있어선 선진국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94년 국가전체 R&D투자비는 98억3천만달러로 미국의 17분의 1, 일본의 12분의 1 수준으로 이는 GM사 등 세계 유수 1개 기업의 투자비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국가기술력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기업의 전략적 제휴와 글로벌 기술경영 문제다.

백서는 기업의 기술개발, 조달, 생산, 판매 등 모든 경영활동을 전세계적으로 전개하는 국제화 전략추구가 올들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이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반도체, 자동차 업종을 중심으로 한 일부 첨단업종에 국한되고 있는 국내기업의 전략적 제휴의 특징은 합작투자에 의한 포괄적 제휴라기보다는 일방적 라이선싱에 의한 기술제휴가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순수한 합작사업을 통한 경쟁력 확보보다는 단순한 기술이전 또는 수출시장 확보 및 지분확보를 통한 경영권 장악을 더욱 선호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글로벌 경영제체를 맞아 기업의 전략적 제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술경영 방향을 시사해주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백서는 이밖에도 기업부설연구소의 위상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96년 9월말 현재 국내에 설립된 총 2천5백70여개의 기업부설연구소가 국가전체 R&D투자비의 84% 이상을 투자하는 등 민간기업이 국가 기술혁신의 주체세력으로 부상했으며, 특히 8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연구소 설립이 90년대 들어 중소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러나 중소규모의 연구소 난립은 자칫 연구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의 부설연구소 역시 연구인력 확보나 연구성과의 산업화 등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현재 학위 위주로 돼 있는 연구소의 인정요건을 능력위주로 전환하는 등 민간기업 부설연구소의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R&D투자비 등 겉으로 나타난 몇몇 지표에 자만하지 말고 내실있는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 구축이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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