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등급심사제도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월 4일 공연윤리위원회(공륜)가 사전에 영화의 상영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정하였다. 그렇다면 마땅히 공륜의 심의위원들은 과거의 부당한 침해행위에 대하여 반성했어야 했다. 그런데 공륜은 여전히 위헌적인 검열을 하고 있다. 공륜은 문체부의 잠정적인 조치에 따라 등급심의만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최근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영화에 대하여 「등급판정 불가」라고 판정하였다는 것이다.

삭제권을 박탈당한 분풀이인가. 아니면 삭제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 삭제하지못하게 하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문체부가 공륜에게 잠정적인 등급심의를 맡겼을 때 많은 사람들은 위헌적인 검열행위를 오랫동안 맡아온 공륜이 그 역사적, 조직적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등급심사」제도의 핵심은 판정불가를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다만 청소년 등에 대한 상영이 부적절할 경우 이를 「유통단계」에서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관람연령을 정하여 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등급심사라도 공륜이 그 심사업무를 계속 담당하는 것은 헌재결정에 배치된다. 다만 입법공백기의 혼란을 우려하여 잠정적인 권한행사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뿐이므로, 지금의 체제에서 공륜에는 「청소년 관람불가」외의 등급을 새로 창설할 권한이 없다. 지금은 합리적인 제도 형성을 위한 조정기(또는 혼란기)이므로 공륜은 적절한 입법이 있을 때까지 잠정적인 권한이나마그 행사를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과도기적인 임무에 맞는 태도이다.

등급심사에 대한 일부의 오해도 문제이다. 헌재는 등급심사제도와 등급심사를 받지 않는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의 행정적인 제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과거 「문화체육부에 의한 검열」제도가 「공윤에 의한 사전심의」제도로 옷을 갈아 입었어도 여전히 「검열」이었듯, 「공윤에 의한 사전심의」제도가 「공윤 또는 다른 형태의 국가기관에 의한 등급심사」제도라는 옷으로 갈아입었어도 여전히 「검열」이 될 여지는 남아 있다.

따라서 등급심사제도라는 형식을 취한다고 하여 당연히 합헌인 것은 아니다. 「등급외영화」의 관객이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우리의 현실과 등급외영화에 대한 광고와 상영제한제도가 도입될 것임이 분명한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등급심사를 맡게될 기관이 영화의 특정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등급외」판정을 하겠다고 「권유」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검열」의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아주 많다. 이번 공윤의 행위는 다른 형태의 검열이 등장할 전주곡이다. 이러한 등급외 판정권은 헌재가 인정한 상영금지권과 더불어 영화제작자를 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수단으로 말미암아 등급심사제도의 경우도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검열제도」가 될 수 있고, 그 통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명시적인 삭제를 전제로 하는 지금의 사전심의제도보다 더 큰 해악을 미칠 수도 있다.

결국 등급심사제도가 지금의 제도보다 진일보한 것이며 유일한 대안이기는 하나, 절대선은 아니므로 그 위험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폐해를 막을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어떠한 형태든 「국가기관」에 의한 등급심사제도가 도입돼서는 안되는 근거가 기에 있는 것이다.

金基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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