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라는 것이 있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금기」란그것을 어기면 즉시벌이나 재앙을 받게 된다는 믿음이다. 금기는 속신이나 속설에 의한 것이 많으므로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차 힘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금기들이 있다.
안토니아 버드감독은 <프리스트>에서 인간에게 가해진 최고의 금기 두 가지를 다룬다. 근친상간과 동성애가 그것이다. 근친상간에 비해 동성애는 금기의 강도가 약한 것 같지만, 이 영화에서의 그것이 「신부의 동성애」임을 감안한다면 결코 덜 센세이셔널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이 영화가상영되었을 때 문제가 된 것은 근친상간 부분이 아니라 신부의 동성애 부분이었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이 영화는 미국 카톨릭계로부터 매우 혹독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근친상간과 동성애라는 강렬한 주제를 동시에 취급할 수는 있다. 그러나그 두 가지를 동시에 본격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까, 안토니오 버드 감독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진행시키던 두 개의 금기 중 하나 「신부의 동성애」만을 집요하게 다룬다. 매우 야심적으로 진행되던 두 개의 금기 중 근친상간 쪽이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느낌을 관객이 받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안토니아 버드 감독은 자신이 야심적으로 제기했으나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주제,「아버지가 딸을 욕망하는 일이 어떤 경우에 피할 수 없는 유혹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남다른 안목이 있다면 이번의 미진함을 다음의 영화를 통해서라도 관객에게제공해야 할 것이다.
<프리스트>가 극장에 걸리기까지 거쳐야 하는 유통 경로는 우리 영화계가 얼마나 처참할 만큼 미숙한 상태에 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간략히 말해서 우리의 관객이 <프리스트>와 만나는 방식은 검열과 왜곡이라는 「이중의 배려」에 의해서이다.
왜곡은 영화관과, 신문기사, 영화평을 통해서 행해진다. 「아버지와 13세 딸 사이의 사건」을 「의붓 아버지와 13세 의붓 딸 사이의 사건」으로 왜곡함으로써 근친상간이라는 충격적인 주제를 미성년자 추행쯤으로 축소시켜버린다. 그리하여 <프리스트>에 나타났던 근친상간이라는 금지에 대한 도발적 이의제기는 극장 안에서만 충격적일뿐 극장 밖에서는 결코 힘을 못쓰는 기묘한 사건이 된다. 신부의 동성애를 통해 전달되는 경이감 또한 검열을 통해 상당부분 실종된다.
1분 30초 가량을 잘라내게 한 그 가위질의 실질적인 주체가 처음에는 공연윤리위원회였다가나중에는 극장협회로 돌변한 사건은 너무 흥미로와서 허탈하게 한다. 한때 공윤이 하던 일을, 이제 위헌 판결에 의해 못하게된 일을, 이제 문체부 눈치보기에 급급해진 극장협회가 떠맡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영상심의가 위헌으로 판결나는 이 시대의 경이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주택 소유자가 자신의 주택을 임대할 때 입맛에 의거하듯이 극장 소유자도 극장을 임대하려는 영화에 대해 입맛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영화라는 현대적인 문화 현상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처리하는 무심함도 답답하지만 극장협회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위질「 주문은 지나친 권력행사 아니 폭력행사가 아닐까. 왜 우리는 그들의 보호와배려 속에서 영화를 보야야 하는가. 관객 스스로 가위질할 권리를 무슨 권리로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인가.
<영화평론가 채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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