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경기고, 서울법대 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同대학원 졸
빌라노바대 경제학 박사, 同대학 경제학과 교수 역임
美 암코社 회장
韓, 美재계회의 지적재산권 분과위원장
아남그룹 회장
지난 60년대 말 반도체 패키징사업을 시작, 이 땅에 반도체산업의 씨앗을뿌린 아남산업이 최근 美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社와 손잡고 그간 국내 반도체사업의 최대 취약부문으로 지적돼온 고성능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나서기로 했다.
이로써 아남은 30년 가까이 추진해온 숙원사업을 이루게 됐음은 물론 국내반도체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TI로부터「자본참여 없는 최신기술 제공」이라는 파격적인 협력을 성사시켜 반도체일관가공생산(FAB)에 진출한 김주진 회장(60)을 본지 조휘섭 부품산업부장이만났다.
〈편집자 주〉
-먼저 축하드립니다. 김향수 명예회장 때부터 추진해온 FAB사업 진출을성사시킨 소감과 각오가 남다를텐데요.
▲반도체 일관가공생산(FAB)은 아남이 지난 68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이래 오랜 숙원사업이었습니다. 사실 FAB사업에 진출하지 못해 그동안 세계 반도체 완성품 시장에서 최고의 기술과 생산능력을 보유했음에도불구하고 사업구조와 수익성 고도화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FAB 진출은 아남의 또다른 도약의 발판이 됨은 물론 국내 반도체산업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반도체산업을 일컬어 흔히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기고 있지만한편에서는 「돈을 잡아먹는 벌레」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워낙 대단위 투자가 지속적으로 소요되기 때문이겠죠. 이런 이유에서인지 FAB사업 진출에 따른 리스크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은데요.
▲이번 FAB사업에 소요되는 총투자비는 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투자재원 조달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다고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술협력선인 TI에 생산능력의 최고 70%까지 수출키로 계약돼 있고, 나머지 30%도 FAB가 없는 세계 유력 반도체업체들에 공급하기로 해 선투자에 따른 부담이 사실상 별로 없습니다. 또한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에서 아남의 비메모리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컨소시엄 참여를 추진하고 있어 재원마련은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남이 추진하는 FAB사업은 기존 반도체 3사와는 다른 비메모리 분야로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나 배경이 있습니까.
▲현재 한국 반도체의 위상은 반도체 3사가 모두 세계 10대 메이커에 진입할 정도로 적어도 반도체에 관한한 선진국 대열에 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국 반도체업계는 굉장히 어려운 시련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직접적인 이유로 가격하락이나 경기사이클에 의한 침체기 등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알려진 대로 국내 반도체 생산구조가 지나치게메모리에 편중돼 경기변동을 심하게 탄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비메모리 제품은 세계 시장의 65% 이상을 차지하는 메이저 시장일 뿐만 아니라 경기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TI와의 협력형태 및 기술이전 품목과 관련해 한마디로 「의외」라는 반응이 많은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설명을 좀 자세히 해주시죠.
▲아남은 이번 비메모리 사업 진출의 최대성과를 성공적인 첨단기술 이전에 두고 있습니다. 웨이퍼 가공기술의 척도는 얼마나 회로선폭을 줄여 집적도를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남은 0.35미크론 뿐만 아니라 향후 0.25, 0.18, 0.13미크론까지 상용화할 계획입니다. 이는 현재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도 메모리와 비메모리에 적용되는회로 선폭이 불과 0.5미크론임을 감안할 때 가장 앞선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신호처리칩(DSP), 임베디드 메모리, 각종ASIC 제품 생산을 통해 국내 반도체의 경쟁력 강화와 질적성장을 거둘 계획입니다. 굳이 단독투자를 고집한 이유도 이같은 기술확보를 보다 빨리 능동적으로 가져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아남의 FAB사업과 관련해 가장 큰 난제는 부지 문제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궁급합니다.
▲무엇보다도 공장부지와 관련해서 현행법령에 대한 아쉬움이 정말 많습니다. 반도체 사업이 국가 전략사업화한 이후 해외공장 건설억제 방안을 마련했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인데 지금은 반대로 국내에 공장짓기가 참으로 어려우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도권 정비계획법 등 큰 줄기에 따라법을 집행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뚜렷한 대안없이 무조건 더 이상의 증설은 안된다는 식의 논리는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분명개선해야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한 외국인이 『어렵게 기술이전 계약을 맺어 생산도 국내에서 하겠다는데 정부가 이를 반대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반문을 할 때는 정말 답답했습니다.
우선 부지선정의 장애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환경문제나 과밀억제 논리의경우 반도체 공장에서만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제조과정에서 가장 청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반도체 공정임은 이미 다 알려진사실이고 과밀억제 논리 역시 반도체 장비의 자동화로 공장규모 대비 종업원수가 상대적으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또한용수 및 납기 등 물류환경을 고려할 때 수도권 이외에 입지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실 TI社는 기술이전 협상시 정부의 이같은 규제를 이유로 공장위치를 시종일관 미국 댈러스 또는 싱가포르 등지에 반도체공장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지금도 그런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세계 최고기술의 반도체공장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아남의 한결같은 의지입니다. 기술이전은 공장이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처럼 국내에서 반도체공장 증설이 어려워지자 반도체 업계가 앞다투어 해외이전을 추진하는데, 글로벌 경영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산업의 공동화나 생산기반 약화 등 국제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우려가 큽니다. 무엇보다 현재 한국 경제가 난국으로 몰린 까닭이반도체 쇼크임을 직시할 때 국가 정책의 우선 순위면에서도 반도체 공장증설허용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이 대목에서 김회장은 자주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해 현재 갖고 있는 답답한 심정을 나타냈다).
-최근 대다수 그룹들이 감량경영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단위 투자가 소요되는 비메모리사업과 TRS사업에 신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경영을 늦추지 않고 있는데 향후 청사진을 말씀해 주시죠.
▲아남은 알다시피 한국 최초로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회사입니다. 그 당시반도체 사업은 선진국에서조차 크레이지(Crazy) 사업이라고 했을 정도니 반도체의 「반」자도 모르던 한국에서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겠죠. 하지만 아남은 해냈습니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개척자적 사명감, 바로이것이 아남의 최대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세계 경제는 반도체, 통신, 그리고 환경사업이 주도할 것이라고 봅니다. 아남은 이미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었고 이번에 환경사업과 TRS 전국사업권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21세기 초일류 기업의 필요조건은 다 갖춘 셈입니다. 따라서 현재 아남의 공격적인 경영방침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봅니다. 아남은 앞으로그룹의 사업구조를 반도체, 정보통신, 멀티미디어, 환경, 금융 등 5개 분야로 구조개편해 오는 2000년까지 국내 20대 그룹군으로 진입할 계획입니다.
-아남은 그동안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켜왔는데 FAB사업 진출로 상대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향후 패키징 분야에 대한 투자 및 주요 사업계획을 말씀해 주시지요.
▲FAB와 패키징사업은 실과 바늘과 같아서 오히려 그 시너지효과로 패키징사업은 한층 강화되리라고 봅니다. 아남은 반도체 경기의 상승, 하락에 상관없이 90년 이후 경영실적이 매년 20%씩 증가해 왔습니다. 올해 역시 전반적인 반도체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전년대비 25% 가량 증가된 1조1천억원의매출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난해 착공해 다음달부터 부분가동에 들어갈 광주 반도체 공장이 완전가동에 들어가는 오는 2000년에는 현재 서울과경기지역에 위치한 3개 공장과 합하여 수출규모가 약 1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를 위해 내년에도 아남은 「타임 투 마켓」에 대비한 과감한 설비투자를 단행할 것입니다. 내년에도 2억3천만달러의 투자를 계획하고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광주공장에 투입될 예정이며 기존 공장의 경우 생산능력 증가보다는 철저한 원가절감을 통한 생산합리화 및 자동화 분야에 치중할 계획입니다.
또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리드프레임을 비롯한 반도체 재료와 다이본더와같은 반도체 제조장비 사업도 97년 이후에는 정상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BGA, 스페이스 칩, 차세대 다이본더 개발 등을 보더라도 오히려 외국 선진업체로부터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수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향후반도체 재료와 장비분야도 패키지 못지않은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최근 경기회복을 점치는 전망들이 자주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
▲아남은 세계 2백50여개 반도체업체들과 거래를 하기 때문에 이들 업체들의 주문량과 주문형태를 분석하면 최소한 경기의 흐름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작년 7월께 경기 「다운턴」을 예측했지만 「설마」했지요. 다시 지난 7월말 이후에는 반도체 경기가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징후를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주문물량과 횟수가 크게 늘어나고, 납기 요구도 빠듯해지고 있는데 이같은 추세는 성수기인 연말을 계기로 보다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끝으로 평소 갖고 계신 경영철학에 대해 한말씀 해 주시죠.
▲저의 경영철학은 창업주이신 김향수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반도체사업을 하시겠다는 아버님을 뵙고 이를 돕기 위해 대학교수직을포기할 때 당시로서는 환갑의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신 아버님이나 명예와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된 대학교수직을 내던진 저나 모두 일생일대의 모험을 한셈입니다. 이 때문에 명예회장께서는 저를 2세 경영인이라고 부르기 보다는「동업자」로 불러주고 계십니다. 여하튼 그 후 오일쇼크와 공장자동화을 위한 결단, 그리고 85년 반도체 대공황을 넘기면서 아남은 성장했습니다. 대홍수속에 생산라인이 전부 잠긴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밤을 세워 납기를 지켰고오일쇼크에서도 단 한명의 감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의에 바탕을 둔 인간중심의 경영」이 아남의 모토이자 저 자신의 모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바로 이것이 오늘날 아남이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인정받고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온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정리=김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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