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기점으로 향후 2000년까지 국내 정보산업계 최대 이슈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꼽힐 수 있겠지만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있다. 전사적자원관리(ERP)패키지 소프트웨어가 바로 주인공이다.
기업이 전산시스템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이미 완성품으로 나온 패키지를선택, 구입해 사용하는 개념이 새로운 전산환경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업내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전통적 방식은 시스템 개발자가 해당업무의흐름을 분석하고 최종사용자의 요구를 반영해 직접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때코볼 등의 업무용 프로그래밍 언어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4GL을 개발도구로 사용한다.
이러한 직접개발방식은 기업마다 문화가 다르고 업무성격에 차이가 남에따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또 특별히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직접개발방식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보기술 환경 및 경제환경 급변 추세와 이를 적절히 따라가는 데 직접개발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재편되고 있고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지고 있다. 따라서 기업경쟁력 제고의 최대무기는 완벽한 정보인프라 구축을 통한 신속한 정보 습득과 활용이다. 이러한 정보기술을 제공하기 위해정보산업계는 하루가 멀다하고 신기술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2년에 걸쳐 자체인력으로 통합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은 기술변화를 수용하지못할 뿐 아니라 개발능력 자체에도 한계가 생긴다. 어렵게 개발했다 해도 완료시점에서는 이미 낙후된 시스템으로 전락해 있을 수도 있다.
또 정보시스템은 계속적인 보완과 수정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대부분 개발담당자들이 회계, 생산 등 분야별로 시스템 유지보수를 책임지는 형태로 운영된다. 그런데 전산직은 유난히 이직률이 높은 분야다. 개발 담당자가 이직하게 되면 그 뒤 유지보수에 대체요원을 투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개발 담당자가 모든 것을 독점한 상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정된 인원으로 전사적 정보인프라를 구축, 운영하기에는 주위환경의 변화가너무 빠르다. 이에 따라 기간시스템은 전문업체 패키지로 구축하고, 구축된인프라를 기반으로 2차개발에 주력하고 신기술 동향을 파악, 접목시키는 정보기획업무에 소수 내부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것이다.
ERP패키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해주고 완벽한 정보인프라 구축을 위한 최적의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는 기업에서 기간을 이루는 업무들 즉생산, 자재, 영업, 인사, 회계 등의 업무를 통합 관리해주는 대형 경영관리용 패키지 소프트웨어다. 생산관리, 인사관리, 회계관리 등 각 업무가 독립적인 모듈단위로 구성돼 있고 이 모듈은 또 수십, 수백개의 세부 모듈로 구성돼 있다. 업체별로 수백 수천의 개발자들이 ERP 개발에만 매달려있고 신기술이 발표되기 무섭게 수용해 업그레이드 제품을 지원해준다.
수요자는 ERP 공급자가 제공하는 패키지 가운데 자신의 기업환경에 맞는모듈만 부분적으로 선택,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추가해 시스템을 확장할 수 있다. 각 모듈은 어느 모듈과도 완벽하게 연결되며 최종 시스템의 크기와 형태 또한 원하는대로 조합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개발업체들이 업그레이드 제품을 지원해준다. 시스템 통합성과 유연성이 최대 강점으로, 기업은 고유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정보시스템을 자체개발해야하는 부담을 줄이고 ERP를 사내 정보인프라로 구축, 활용하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단 이런 패키지 도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을통한 완전한 기업업무 프로세스 표준화가 앞서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당 부분 수정작업이 필요하게 되고 그것이 잦아지면 패키지의 성격을 잃게 돼 자칫하면 패키지의 모듈별 통합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ERP 구축에는 기업재구축(BPR)을 포함한 컨설팅 분야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ERP패키지를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업무의 재구축이 가능해지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유연성과 통합성을 무기로 최신기술을 탑재한 ERP패키지는 이제까지의 자체개발시스템에서 겪었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도구로 기업 경쟁력 제고의 최적 시스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적인 ERP 시장의 급성장은 이러한 ERP의 효능을 입증해 준다. 조사전문업체인 가트너그룹에서는 2000년대까지 전세계 기업의 40% 정도가 새로운ERP시스템으로 교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IDC 조사에 따르면 세계 주요15개 클라이언트서버 애플리케이션 업체의 경우 99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32%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ERP가 유일무이의 만능 솔루션은 아니다. 더구나 현재 공급되는 제품은 거의 모두가 외국산 패키지로 우리와 차이가 나는 외국 기업환경을 모델로 만든 제품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ERP 도입에 대한 의구심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MRP가 처음 소개될 당시에 상당한 각광을 받았지만 실제 성공적으로 구축한 사례를꼽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언제부터인가 MRP 바람이 잠잠해졌다는 예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시장형성기에 불과해 ERP 도입의 성공적 모범사례가 없다는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현재 한창 구축중인 선두기업들이 설치를 완료하고 그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2, 3년 후에야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현재 패키지 공급상황에 대한 의구심일뿐 ERP 개념확산은 분명 긍정적이라는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향후 변함없는 과제라는 데 이의가 없다면 기업이 정보시스템을 굳이 자체개발로 구축하려는 방식은 더 이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업체가 지원하는 ERP패키지를 정보인프라로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2차개발이나 신기술 접목 등을 기획, 검토하는 정보기획 업무분야에 전산인력을 재배치해 활용할 수 있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며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전세계적 추세로 다가왔다.
물론 현재의 시장상황에 따라 외국산 ERP패키지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얘기는 아니다. 현재 외국산 패키지는 성격상 국내기업 업무환경에 맞추기보다 외국기업의 업무표준화에 기반해 개발된 패키지에 기업업무를 맞추어야하는 상황을 낳고 있으며 이 때문에 기업경영자의 더욱 신중한 검토와 결단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SI업체들이 수행하고 있는 외국산 패키지의 한국화 작업과 국내 중소개발업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형 ERP 개발작업 등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ERP에 대한 윤곽이 확실해질 세기말 이후 2000년부터는 ERP가 기업의 전산환경을 구축하는 보편적인 기업정보시스템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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