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열이 높은 우리현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학생은 곧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일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해 왔다.
게임에 대한 이같은 부정적인 인식이 우리사회에 폭넓게 퍼져 있어 게임산업은 천대받아 왔다. 어두컴컴한 뒷골목에 숨어서 게임을 제작하거나 게임을즐겨야만 하는 일로 여겨졌다.
이렇다 보니 게임업체들이 우수인력을 확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어려웠던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불과 1∼2년사이에 상황은 역전돼『초고속정보통신망을 질주하는 자동차는 게임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멀티미디어시대를 맞아 게임산업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앞장서서 게임산업의 육성을 적극 부르짖고 다각적인 정책을마련하고 있으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게임산업의 전망을 보고 앞다퉈 진출함에 따라 게임산업을 바라보는 눈들이 바뀌었다.
게임산업의 붐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우수한 인력들이 게임산업으로 몰리고 있는 것. 국내에서 가장 머리가 우수하다는 세칭 일류대 출신들이 게임산업으로 뛰어드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포항공대·과학기술대 출신들이 스스로 게임업체를 설립, 게임제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게임산업에 가장 먼저 흥미를 갖고 학생들이 앞다퉈 진출한 대학은 과기대. 이 학교출신의 한 관계자는 『학교분위기가 자유스러운데다 선후배들이 같이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게임을 자연스럽게 접해 게임업체를 창업하거나 선배회사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들려준다.
지난 9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온라인을 통한 머드게임 「단군의 땅」을 개발,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니텔레콤의 장인경 사장(36)은 오랫동안 과기대 출신의 대부노릇을 하고 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장사장은 대전에서 과기대 출신들로 게임회사를 구성, 지금까지 이끌어 오고 있다. 이 회사의 핵심역할을 맡아왔던 김지호씨(27)와 심재한씨(27) 등은 모두 과기대 전산학과 출신들이다. 김지호씨는 최근 마니텔레콤의 도움을 받아 풀바람시스템을 설립하고 게임회사의 경영자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온라인게임과 패키지게임시장에 일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S&T온라인의윤석민 사장(30)도 과기대 출신. 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92년 과기대 대학원에서 전산학을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있는임훈재씨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경영정책학을, 이원기씨와 박민재씨는 과기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온라인게임사업을 벌일 예정인 태울도 과기대 물리학과 90학번 4명이 모여서 창업한 회사. 이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조현태씨는 과기대 물리학과 90학번이며 창업멤버인 박정훈씨는 과기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과기원 석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서울대 출신들은 건잠머리컴퓨터와 사가엔터테인먼트의 주승환 사장과 한글과컴퓨터에서 「글」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번에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 사장과 결별하고 나모인터렉티브를 설립한 김형집 사장, 94년에 설립된 넥슨사의 김정주 사장이 있다.
대부분 서울대 컴퓨터스터디클럽의 회원으로 활동하다 게임산업에 눈을 돌린 경우로 주승환 사장은 서울대 공업화학과 85학번. 그는 원래 CD롬 타이틀의 제작에 뛰어들었다가 자연스럽게 게임제작에 손을 댔다.
주사장은 현재 셰어게임의 대명사인 「게임나라」를 5편까지 제작·출시했으며 직접 게임제작에도 뛰어들기로 하고 서울대 후배들을 모으고 있다. 이회사에는 현재 서울대에 재학중인 학생신분으로 참여하고 있는 개발자들이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모인터렉티브의 김형집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86학번. 현재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글」을 개발한 주역중의 한사람으로 서울대 컴퓨터스터디클럽 출신인 후배들과 함께 한글과컴퓨터에서 독립해 게임제작에 나서고 있다.
IBM과 공동으로 온라인머드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넥슨사의 김정주 사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
그는 과기원 전산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이 회사의 제작자들도 대부분 과기원 출신과 서울대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올들어 삼성전자에서 출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러브」의 제작업체인 단비시스템의 김성식 사장은 포항공대 출신. 기계공학과 1회 졸업생인 그는 재학중이던 지난 90년에 「마성전설」을 개발, 현대전자 주최의 제1회 대학생소프트웨어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게임개발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는 93년 단비시스템을 직접 설립하고 「고고우리별」 「일지매전-만파식적편」 등을 제작·출시하면서 단비시스템을 전문게임업체로 키워나가고있다. 이 회사에는 포항공대 전자계산학과 1회 졸업생인 염정철 개발2부 부장과 전자계산학과 2회 졸업생인 박정근 개발3부 부장 등이 있다.
명문대 출신들이 게임업계에 속속 가세하면서 국내 게임산업의 발전에 큰기여를 하고 있다. 우선 선배들이 자연스럽게 후배들을 이 길로 인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게임산업의 사회분위기를 제고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부는 신세대답게 명문대를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게임산업으로 전공을 아예 바꾸는 일도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학위보다는 자신이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공부마저 그만두는경우가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
어쨌든 이들 명문대 출신들은 국내 게임산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게임산업이 일본이나 미국에 밀려 고사직전에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게임산업으로 우수인력이 몰려들고 있는 현상은 아주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이들 우수인력들이 마음놓고 게임제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국내 게임산업의 여건이 완비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 명문대 출신들은 일종의 병역특례혜택을 받기위해 게임업체로 몰리는경향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일시적인 현상이아니라 영구적으로 게임분야에 우수인력이 몰릴 수 있도록 국내 게임산업체들이 자본력을 갖춘 대형업체로 발돋움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기업들도 단순히 외국 게임업체들의 게임을 수입하는데 몰두하기보다는 이같은 우수인력을 확보한 중소업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원철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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