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표
최근 대덕에서 열린 어느 심포지엄에서 한 청중의 질문 형식을 빈 한탄성,호소성 발언은 장래의 정보기술의 개발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던 좌중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타 분야 연구원에서는 TDX-10·주전산기·CDMA 개발 등 확실한 연구업적을 내놓고 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거론하는 데 비교하면 소프트웨어분야에서는 뚜렷한 가시적 결과를 스폰서에게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신분야와 비교할 때 연구비 지원도 취약하고 표준화활동 등 연구수행 환경에서도 미흡하다며 소프트웨어 연구에 대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소프트웨어 기술의 그간 성과에 대한 인식은 산업계·정부 등에서 시각이비슷할 것이다. 일반론으로 얘기할 때는 소프트웨어는 자원절감형, 두뇌집약적 산업이므로 자원이 부족하고 인적 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에 매우 적합한산업이라고 하는데 이의가 없다. 또한 우리는 도스 하나로 하드웨어에 대한소프트웨어의 지배를 입증하고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된 빌 게이츠의 신화를부러워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버금가는 신화가 탄생하기를 고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각론에서는 성공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은 대단히 어렵고성공해도 직접적인 경제효과를 기대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기술개발에 소극적이 되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패키지 소프트웨어만을 연상한다. 과연 이것만 잘 하면 소프트웨어는 충분한 역할을 하는가. 기술개발은 잘 팔릴 소프트웨어에 집중돼야 하는가. 이를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소프트웨어가갖고 있는 본질과 특성을 재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본질은 책과 같은 것이다. 책의 가치는 종이의 재질과 인쇄의 미려함보다 그 안에 담긴 창조적 내용이나 지식에 있는 것처럼 소프트웨어도 그것을 담는 매체에 관계없이 담긴 내용의 가치가 척도가 된다.
책을 일단 저술하면 가치는 내용에 있는 것인 만큼 일반 공산품과는 달리추가 재료비를 거의 지출하지 않고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다. 따라서 베스트셀러가 되면 이의 판매수익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소프트웨어도 개발비용이 위주이고 복사만 하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빌 게이츠의성공이 바로 이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되면 좋지만 그렇다고 이를 위해서만 책을 저술하는 것은 아니다. 판매로 얻는 직접적 수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탐구한 지식을기록하고 서로 교환해 지식을 발전시키고 축적된 기술을 후대에 전수함으로써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문명의 발전과 경제적 발전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도 정보시대의 가치척도인 정보를 가공·처리·저장·전달하는 기본 수단이라는 점이 더 중요할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더 큰 역할은 정보통신기기·가전제품·무기·교통수단 등기기의 지식화·자동화를 도모하는 데 있으며 이에 따라 경제적 파급효과 또한 계량화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시장규모보다 훨씬 더 큰 시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는 이미 공기와 같은 존재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책과 같이 지적 창작물이다. 이는 책의 내용처럼 보이지 않는 기술의 결정체다. 책 내용의 충실성은 저작자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소프트웨어의 우수성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소프트웨어 자체를 일개의 상품으로만 인식하면 우리는 미래사회를 잃게 될지 모른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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