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심층진단 학교 정보화교육 이것이 문제다 (6)

교육용 컴퓨터 현실화시켜라

『이렇게 열악한 컴퓨터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울 K국민학교 김형민 교사(가명·34)는 컴퓨터 과목을 어떻게 운영해야할런지 막막한 심정이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이 학교의 컴퓨터실에는 30여대 PC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컴퓨터는모두XT인 데다 하드디스크도 없고 기억장치는 3백60KB 용량의 플로피디스크두 개가 전부다. 요즘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골동품인 셈이다. 이런 컴퓨터가 우리나라 국민학교 교육용 보조교재로 버젓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컴퓨터에서 운용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민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PC에서 사용하고 있는 운영체제(OS)는 5∼6년 전 유행하던 도스 3.3이 고작이고쓸 수 있는 교육용 프로그램은 교육개발원에서 몇 년 전 개발한 제품 몇 종이 전부다.

게다가 쓸 만한 응용프로그램은 PC에서 전혀 실행할 수 없다.

「하드웨어 보급실태」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국의 컴퓨터 교육이얼마나 심각한 중병에 시달리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9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초등학교 및 중·고등학교에 보급된 컴퓨터는 1만5백여개 학교에 23만5천대 가량. 공간이 비좁아 컴퓨터실을 설치할 수 없는 곳을 제외하고 93% 가량의 학교에 교육용 PC가 보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실이 설치된 학교에는 평균 22.4대씩 보급됐다. 이같은 수치는 외형상으로는 선진국과 컴퓨터 보급율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속사정이 다르다. 현재 설치된 PC가 대부분 단종돼골동품 취급받는 「한물간 기종」이기 때문. 무려 73%나 되는 16만7천대가XT와 AT 기종에 속한다. 게다가 나머지도 거의 386기종이며 486과 펜티엄이 깔린 컴퓨터실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찾아보기 힘들다. 한마디로 학교컴퓨터교육은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골동품같은 PC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컴퓨터 교실은 학생수의 절반 수준인 25∼30대 정도의 PC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대의 컴퓨터를 놓고 두명의 학생이 자리다툼을 하기 일쑤입니다』

영등포 K국민학교 오성택(가명·39)선생의 얘기이다.

참고로 가정의 컴퓨터설치 현황을 한번 살펴 보자. 일반가정에는 매년 2∼3배이상 성능이 향상된 고성능PC가 보급돼 지금은 워크스테이션과 맞먹는1백33MHz와 1백50MHz급 펜티엄PC가 기본으로 설치되고 있다. 처리속도나 기억용량이 교육용PC로 사용되는 XT보다 무려 1백배나 향상된 제품이기본제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학교컴퓨터와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컴퓨터 교육시 필수적인 PC환경이이렇게 열악하니 교육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집에서 펜티엄 멀티미디어PC를 사용하던 학생들이 컴퓨터수업을 마냥 따분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당초 설치한 네트워크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 네트워크를 제대로 다룰 줄아는 교사도 거의 없다. 고장이 그대로 방치되는 학교도 상당수에 이른다.

각급 학교에 구축된 LAN이 이 정도이니 외부와 모뎀을 통한 데이터통신은 엄두나 낼 수 있겠는가. 일부 뜻있는 교사가 사재를 털어 펜티엄PC와모뎀을 구입,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해도 통신비용을 이유로 거절당하는게 대부분이다. 이쯤되면 외국과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네트는 아예 꿈도 못꾼다.

이런 환경에서 컴퓨터 교육이 제대로 실시될 리 만무하다. 대부분의 학교가 PC앞에 앉아 이론교육과 다름없는 수준의 「칠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어차피 학교의 PC로는 실습을 겸비한 교육이 불가능하니 적당히 컴퓨터상식을 설명하는 수준에서 수업을 마무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이컴퓨터 교육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업이 시작되면 먼저 선생님이 수업내용을 설명한 다음 키보드로 몇 글자 쳐넣도록 하고 또 설명해요. 이런 식으로 몇번 컴퓨터를 만지면 수업이끝나요.』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수원시 김혁진(14)군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답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외국의 컴퓨터 시설은 어떤가.

미국은 이미 80년대부터 학교 실습실 1인 1PC가 실현된 데다 산학연계체제가 잘 구축돼 있어 기업체들이 기증한 최신PC가 학교의 컴퓨터실을 가득채우고 있다. 물론 이 경우 PC나 교육장비를 기증한 기업체나 개인은 그에상응하는 세제감면 혜택이 부여된다. 또 이런 사회사업의 혜택이 미치지 않는 곳에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책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가정보다 휠씬앞선 고성능 컴퓨터를 학교에서 직접 다루면서 배울 수 있다.

영국의 경우 정부 각 부처가 공동으로 컴퓨터 교육에 관심을 갖고 대응해성공한 사례다. 영국은 교육부와 통상산업부가 공동으로 81년부터 학교에 컴퓨터 보내기 운동을 펴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모든 중등학교에 시중가격의절반가에 컴퓨터를 보급, 꾸준히 시행한 결과 유럽에서 가장 컴퓨터 교육환경이 앞선 나라로 손꼽힌다.

어떤 기종을 보급해야 국가 백년대계를 무리없이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은 최소한 보급형 PC기능의 70%는 아가는 기종이 보급돼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요즘같이 펜티엄 1백33MHz제품이 많이 팔리는 시점에서는 최소한 펜티엄 75MHz나 90MHz쯤은 돼야 시중에 유통되는 프로그램을작동시키며 교육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CD롬드라이브도 설치돼 있어야 하며 대용량 하드디스크와 네트워크는 필수적이라고 한다.

이때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바로 제품 라이프사이클이다. 교육전문가들은불과 1년도 못돼 골동품을 양산하는 PC의 고성능화 행진을 무한정 아갈 수없기 때문에 교육기자재 감가상각기간을 2년 안팎으로 현실화시키고 매년 3분의1 이상을 신제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부터 정부가 만년 XT와 AT에 머물러 있던 교육용컴퓨터를 뒤늦게 교체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이미 전국 15개 시·도 과학교육원에 펜티엄급 PC 50여개가 설치된 멀티미디어 교육실도 새로 설치했다.

올해에는 1천9백6개 학교와 교원연수기관에 1만9천6백대의 486PC를 보급할 계획이며 15개 시·도에 시범학교를 선정해 멀티미디어 교육실을 설치해줄 예정이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98년까지 교육정보화 사업비로 1조원을 책정해 둔 상태다. 이중 교육정보화 기반구축에 2천1백90억원, 각급 학교의 시설 및 장비지원에 7천8백17억원을 책정했다. 특히 초등학교 및 중등학교 컴퓨터 실습실을 1개학교당 2개교실로 늘리고 실습실 보급률을 지난해 47%에서 98년에는 64%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교직원이 컴퓨터를 생활화시키도록 486컴퓨터 15만대를 보급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중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같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몇 년 동안 PC를 쏟아붓는 것보다는 매년 1천억∼2천억원 안팎의 고정예산을 확보해 항상 일정한수준의 최신 PC를 학교에 공급, 미래의 새싹들이 선진국 학생들보다 앞선컴퓨터 환경에서 디지털 세계를 익힐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교육의 백년대계에 어울리는 정책이라고 충고한다.

<남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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