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과기원의 "무자격 입학"

국내 최고급 기술인력 양성기관의 하나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서울분원에서 상당수의 무자격자를 입학시킨 것이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감사원 조사로는 지난 93년부터 95년 사이 서울분원에 입학한 8백22명중무려 3분의 1 가량인 2백84명이 자격미달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자격미달 학생 중에는 자퇴나 제적 및 졸업생 등이 포함돼 있어 실제문제가 될 수 있는 학생은 1백40여명 수준이라는 것이 과학기술원 자체조사결과이지만, 과학기술원의 학사관리가 왜 이처럼 허술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과학기술원은 형식적인 재직증명서만 내면 서류심사에서 무사통과시키는안이한 학사행정을 수년간 반복해 왔는데도 과학기술처 등 관계당국에서는이에 무관심했다는 반증이다.

과학기술원 서울분원의 학사행정이 이같이 부실한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우선 서울분원은 발족 당시부터 제도적인 문제점을안고 있었다고 본다. 과학기술원의 대덕으로의 이전을 계기로 서울잔존을주장하던 일부 교수들은 당시 궁여지책으로 정부지원이 없이도 서울분원을운영할 수 있다며 서울분원 자체의 독립운영방안을 제시했고, 이것이 오늘날부실화를 초래한 근본원인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서울분원은 지난 92년 발족때부터 재정능력이 취약한데다 교수요원도 절대 부족한 실정이었다. 소속기관장의 추천을 요구하는 서울분원의산학제와 연구원제 형태의 대학운영에서도 허점이 노출됐다. 기업체에서 보면실질적인 학비지원 없이도 형식적인 재직증명서만 떼어주면 그만인 현행산학지원제도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밖에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기술원 서울분원은 서류심사와 영어시험만으로 입학, 석.박사 학위까지 딸 수 있으며 군입대도 연기된다는 점에서그동안 학생들의 분에 넘치는 관심의 대상이 된 것도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것이다.

과학기술원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되고 있는 무자격자의 유형이 대부분 담당교수가 자신의 실험실에 있는 우수학생이 병역문제 등으로 연구활동에 어려움을 겪자 이들을 기업체에 연결, 대학원과정에 입학시켜 문제가 된 경우로서 금품을 수수하거나 입시문제를 노출시키는 등의 근본적인 입시부정과는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학생이라고 해도 기본원칙을 무시한 채 적당한 편법을 동원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이번 사태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과학기술처의 입장도 석연치 않은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처는 "과학기술원이 순수연구기관이 아닌 연구기능과 교육기능을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과학기술처의 지도감독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과학기술원은 어디까지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며 과학기술처는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지도감독의 의무와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사태에 대한 보다 명확하고 적극적인 대응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이번 사태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처와 과학기술원간의 불협화음도문제였다. 과학기술원은 장기발전대책의 일환으로 지난해 석.박사과정 4개프로그램중 신소재 등 3개 프로그램을 오는 3월부터 대덕본원과 통합하고 경영정보프로그램은 오는 3월 신설되는 테크노경영대학원에 통합 운영한다고했지만, 과학기술처는 30일 서울분원의 조기 폐쇄조치를 결정해 혼동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무자격자 입학사태와 관련해 해당 교수와 학생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관련 기업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조치가 있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여러가지 사례가 얽혀 있는 매우 복잡한 형태를 띠고있다는 점에서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로 산업체의 연구인력양성에 기여하는 산학제 프로그램의 위축을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옥석구분을 면밀히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관련기업들의 도산.부도나 내부갈등 등으로 본의 아니게 무자격자가된경우에 대해서는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교육적인 차원에서 깊은 배려가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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