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세가지 색 "화이트/블루/레드"로 유명한 거장 키에슬롭스키의 1988년 작품 인"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우선 제목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짧은"이란 무엇인가? 단지 영화의 깊이를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여기서 짧은 이란 "예술적인" 혹은 "본질적인"의 의미로 읽힌다. 사랑의 본질을 추구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19세의 순진한 청년 토멕(올라프 루바첸코 분)은 풍만한 육체를 가진 30대 의여인 마그다(그라지나 차폴롭스카 분)를 훔쳐본다. 망원경과 자명종은 훔쳐보는 행위의 소품들이다. 토멕의 책상은 마그다를 훔쳐보기에 가장 알맞은자리에 놓여 있으며, 망원경은 토멕의 책상에 고정되어 있다. 아울러 자명종 은 마그다의 귀가시간을 알려 주는 중요한 도구이다. 자명종이 울리면 토멕 은 독서를 끝내고 망원경을 통해 그녀의 방을 들여다본다.

망원경에 고정된토멕의 눈은 마그다의 빠르고 느린 그 다양한 움직임 모두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오랜 반복으로 익숙해져 있는 토멕의 훔쳐보기는, 그러나 그녀의 육체를 음미하는 은밀한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일거 수일투족으로부터 그녀의 내면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의 오래 된 기도 같은것이다. 문제는 마그다이다. 그녀는, 첫사랑에 빠진 19세의 순진한 청년이 1년이 넘도록 동경할 만한 순수한 여자가 아니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마그다의 모습은 구두로 표현된다. 벗어 놓은 여자 구두에서, 채워지기를 희망하는 성적갈망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관객이라면, 자신의 구두를 유난스럽게 창문앞 책상 위에 벗어 놓고 있는 여자의 무의식까지를 간파할 수있을 것이다. 요컨대 그녀는 자신의 육체적 갈망을 광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상 위에 망원경을 놓고 있는 순진한 청년과, 책상 위에 구두를 올려 놓고있는 도발적인 여인과의 사랑은, 따라서 결코 순조롭지 않다. "사랑에 관한짧은 필름"은 이 두 인물 간의 거리의 좁힘에 관한 영화이다. 망원경을 통 해좁혀진 추상적인 거리를 왜 좁히며 어떻게 좁히는가?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일 것이다. 사랑하는 자를 좀더가까이 보고 좀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은 마음이야 사랑에 빠진 자의 보편적인 심정이 아니겠는가? 키에슬롭스키는 토멕의 입을 통해 "당신이 어젯밤 울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자의 울음과 상심 때문에 가슴 저리게 된 토멕 은 1년이 넘도록 행해온 훔쳐보는 행위를 고백하고 만 것이다.

이 영화의 끝장면 마그다가 토멕의 망원경을 통해 자신의 방을 들여다 보는장면은 압권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토멕의 훔쳐보기에 대한 마그다의 판정 이되는 것인데, 여기서 마그다는 "감동"을 표현한다. "내가 버림받고 홀로 남겨져 있을 때조차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훔쳐보는 행위를 "관음증"이 아니라 "동경 의행위/성스러운 사랑의 행위"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한 영화이다. 참을 수없을 만큼 느리게 전개되는 화면과 음악은 관객에게 오히려 이상스런 쾌감을 맛보게 할 것이다. 채명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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