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LBP 예외수입 허용 유감

통상산업부는 최근 미휴렛패커드사의 A4크기 레이저프린터(LBP) 수입신청 에대해 예외수입조항을 적용해 수입을 허용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내 프린터산업계는 정부정책이 이렇듯 일관성이 없어서야 정부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비난이 높다.

이번의 정책결정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한국휴렛팩커드는 최근 정부에 보 급형 LBP 2만대 미만을 연말까지 수입하겠다는 신청서를 제출했고 정부는 연초에 있었던 한미통상회담에서 합의했던 미국제품의 제한수입 허용을 근거로 이의 예외수입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통산부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93년 HP사의 LBP 9천대 가량을 예외수입한 전례가 있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 2만대 정도수입을 허용했다고 해서 국내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계산과 함께 이번에 이 건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향후 한미 통상협상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소량의 우수 외국제품의 반입으로 국산제품의 경쟁력이 향상되는 반사이익이라 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미국의 통상압력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통상외교상 긍정적인 측면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책운용의 기본틀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예외를 인정해야 할 경우에는 그로 인한 이해당사자, 이 경우는 관련업계에 불가피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이 없이 예외조치가 자주 있다면 정부정책은 국민으로부터 불신 을 당하고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HP의 LBP 예외수입 처리에서는 이같은 노력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LBP는 수입선다변화 품목이다. 수입선다변화제도는 대일무역역조를 개선하면서 국내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LBP를수입선다변화에 포함시키고 있는 의미는 국내 프린터산업을 일본제품 에서 보호하자는 취지로, 더 세밀히 보면 프린터의 핵심부품인 프린터엔진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엔진을 제조 하는 국가는 일본과 우리나라 두 나라에 불과하다. 따라서 프린터에 수입선다변화제도를 적용시키면 일본산 엔진을 채용한 프린터는 원산지규정에 의해 수입이 제한되므로 자연히 국산 엔진의 보급이 늘어나고 생산활동이 강화되 는 효과가 있다.

지난 6월 정부가 수입선다변화제도를 재조정할 때 국내 LBP엔진업체들이 자사엔진을 채용한 프린터제품 가격을 내리는 등 불공정행위가 있어 중소 프린터업체들이 LBP를 수입선다변화 품목에서 해제시켜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사례가 있었으나 LBP를 계속 존속시켰던 이유도 국내 LBP엔진산업의 경쟁력 을보다 강화시키기 위한 배려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HP의 LBP 예외수입 허용은 국산 엔진의 경쟁력 강화라는 기본정책에 위배된다. 일본 캐논 엔진을 채용한 HP의 프린터는 보급기종이고 가격으로도 국산제품에 비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2만대라는 수입물량 자체보다는 세계 최고의 제품인 HP사의 제품이 앞으로 계속 국내에서 판매된다는 인식이 존속할 것이고 그만큼 국산 엔진 입지는 좁아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HP의 예외조치를 앞세워 타외국회 사들이 수입허용을 요구해온다면 어떤 반대명분을 가지고 이를 저지할 것인지 궁색해질 것은 물론이다.

정부가 두번씩이나 HP사에 예외수입을 허용하려면 지난 6월에 수입선다변화품목에서 이를 해제시키든지 아니면 HP사로 하여금 국산 엔진을 채용하도 록했어야만 했다.

또 정부는 이번 일을 처리할 때 예외조항을 적용했으면서도 국내관련업체 에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밀실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지적이 다. 정부는 지난 93년 LBP 예외수입을 적용했을 때 국내업체들에게 동의를 구한 전례가 있다. 당시 한미 양국간 반도체 덤핑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됐을 때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이같은 카드를 사용했다는 설명을 달았음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결정을 지켜보면서 산업정책을 결정하는 정부관계자들의 무소신의 결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통산부는 정부조직개편후 전자산업에 관한 정책결정권의 상당부분을 정통 부에 이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통상정책에 관한 한, 전자관련업종이라 하더라도 통산부의 고유권한인 것은 자명한데 이번 일처리는 일종의 의욕부 재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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