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의 밭", 혹은 "제2의 섬유"로 불리는 인쇄회로기판(PCB:Printed Circuit Board). 반도체.디스플레이 등과 함께 국내 전자부품산업을 이끌어오고 있는 PCB산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90년대 들어 관련 세트산업의 침체와 더불어 뚜렷한 하향곡선을 그렸던 PCB 산업이 지난해부터 서서히 회복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올들어서는 완전히제2의 도약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전.컴퓨터.통신.자동차 등 PCB를 요구하는 주요 세트산업이 기대이상 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다 엔고를 계기로 일본의 PCB수요가 우리나라로 대거 몰려 국내 PCB산업은 양적, 질적으로 큰 폭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성장세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산업 의 급부상과 자동차 전장화의 가속화,그리고 멀티미디어 기기의 등장 등으로 이어지면서 적어도 향후 2~3년간 국내 PCB산업이 두자릿수 이상의 호황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가 전자공업진흥회 자료를 인용, 최근 조사발표한 PCB산업동향보고서 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PCB생산은 총 7천7백56억6천4백만원으로 93 년(5천7백70억3천6백만원)대비 무려 34.4%나 증가했다. 올해도 엔고로 인한 가전시장의 호조와 컴퓨터.통신 등 산업용 PCB수요가 성장을 주도하며 전년대비 24.9% 늘어난 총9천6백90억원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따라 국내 PCB산업은 머지않아 단일 부품으로는 반도체.디스플레이의 뒤를 이어 세번째 로 "1조원시장"으로 올라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PCB산업의 쾌속성장을 이끄는 견인차는 단연 수출이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지난해 PCB업계의 수출(로컬수출제외)액은 3천3백11억6천8백만원으로 93년보다 51.7%증가했으며 올해도 해외주문이 쇄도, 전년대비 30.1% 늘어난 총 4천3 백10억원의 실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코리아써키트.삼성전기.대덕전자를 비롯한 중견 PCB업체들이 적극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데다 엔고로 인한 일본 수요급증과 일본PCB업계의 위축에 따른 반대급부로 수출전망은 한층 밝아졌다. 가전 및 정보통신업계의 경기호조로 국내 PCB수요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PCB연구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PCB시장은 93년(4천6백40억원)에 비해 26.2% 증가한 5천8백54억원에 달했으며 올해도 전년대비 26.7%늘어 총 7천4백19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품목별로는 단면.양면.MLB(다층기판)가 모두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특히 6층 이상 MLB의 강세가 두드러져 올해 MLB시장은 금액면에서 처음으로2 천억원을 돌파하며 단면과 양면을 맹추격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PCB업체들이 채산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단면 및 양면PCB사업을 현수준에서 동결 내지는 축소하고 MLB의 설비증설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어국내 MLB생산 및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와함께 HDD.FDD 등 PC용 드라이브,의료기기,레이저 픽업.카메라.캠코더 등광학기기 복사기.팩스 등 OA기기,방산기기,TFT-LCD 등 디스플레이류를 중심 으로 채용이 확대되고 있는 FPC(연성PCB)시장도 MLB와 함께 PCB시장의 기대 주로 관심을 끌고 있다.
관련업계 및 기관에 따르면 올해 국내 FPC시장 규모는 2백억원대에 불과할것으로 보이나 해외주문량이 늘고 있고 국산 FPC에 대한 수요업체들의 인식 이 호전돼 전체 PCB시장의 성장세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의 사업포기로 인해 안정적인 성장이 답보된 단면P CB 역시 꾸준한 수요증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버스루홀.카본점퍼.EMI보드 등 고부가 특수PCB가 업계 주력제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외형면에서 이처럼 큰 폭의 성장이 예견되고 있음에도 불구, 국내 PCB업계의 채산성은 계속해서 하락, 갈수록 실속을 찾기 힘들게 됐다는 것이업계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즉 원판(CCL).동박(ACF/UCF).잉크(PSR).화공약품 등 각종 원부자재 가격이 잇따라 크게 인상됐고 지속적인 인건비상승으로 채산성이 크게 위협받음으로써 전반적인 호황세 속에도 불구,"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것. 특히 "얀(yarn)" 공급파동에서 비롯된 에폭시원판 구득난으로 올들어서만도 두 차례 가격이 인상되는 등 기초 원자재가격 상승분이 PCB업계에 그대로 전가되고 있는데도 세트업체는 생색내기식의 소폭가격조정에 그치고 있는 실정 이다. 에폭시 원판 구득난은 2.4분기를 넘어서면서 심각한 품귀사태로까지 발전, 산업용 PCB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따라 PCB업체들은 채산성 확보는 고사하고 원판이 없어서 제품을 못만드는 "풍요속의 빈곤"에 직면해 있다. 현재 두산전자.코오롱전자.한국카본 등 에폭시원판업체들의 총공급량은 수입 분을 합쳐도 국내 총수요량의 80%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컴퓨터 및이동통신 단말기시장의 확대로 산업용 PCB수요는 내수 및 수출 모두 크게 늘어 수요와 공급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중견 산업용 PCB업체들은 대단위의 설비증설을 다각도로추진하고 있고, 세계적인 얀 품귀 사태로 인해 에폭시 원판 구득난은 쉽사리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인해 중국산 저급 에폭시원판이 일부소규모업체를 중심으로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새로운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차선책으로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원판 구매선을 변경하는 것도 모색하고 있으나 우선 가격이 맞지 않는데다 해외시장 역시 원판수요가 공급을 초과, 오히려 국내로 공급요청이 일부 들어오는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PCB제 조원가의 40~60%를 차지하는 원판공급이 차질을 빚음에 따라 PCB업체들은 생산 및 납기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모처럼 찾아온 호황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심지어는 주문은 부족하지 않은데도 원판조달 지연에 따른 생산차질로 흑자도산하는 업체도 적지않다.
이에따라 선금거래.줄서기.사재기.로비 등 원판수급을 둘러싼 원판업체와 PCB업체간의 부작용이 관행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으며 이런 가운데 월 생산 능력이 2천㎞ 안팎인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특히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상반기에만도 D, J, S사 등 월 평균 2천㎞ 내외의 생산능력을 갖춘 산업용 PCB 업체들이 도산했다.
업계관계자들은 "지금도 대덕전자.LG전자 삼성전기.코리아써키트.남양정밀.
우진전자.한일써키트.새한전자 등 10여개 중견 업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PCB 업체들이 원판공급 차질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비교적 국내 공급능력이 갖춰진 민생용 PCB원판인 페이퍼 페놀원판도 상황은 마찬가지. 중소 단면PCB업체들의 업종전환과 일부 중견PCB업체들의 잇따른 생산포기로 기존 PCB업체들은 대대적인 설비증설을 추진중인데 반해 두산.코 오롱.신성기업 등 원판공급업체들은 수출을 점차 확대함으로써 심한 수급불균형이 페놀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경기호황과 원판수급차질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PCB업계의 "양극화"현상은 최 근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대대적인 설비증설로 원판수급이 상대적으로원활한 중견업체들에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중소업체들 은 주문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원판수급 지연으로 거래선이 끊겨 부도를 내는 중소업체가 늘면서 주요 세트업체들이 안정적인 부품공급을 위해 물량을 중견업체로 몰아주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어 중소 PCB업계의 "빈곤의 악순환"은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에 LG전자.삼성전기.청주전자.심텍.남양정밀 등 대기업계열 PCB업체들이 대규모의 설비증설을 통해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어 대덕.코리아.새한.한 일.우진 등 중견 PCB 전문 6사가 주도해온 국내 PCB시장 판도가 빠르게 재편 되고 있다.
지난 상반기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들 그룹계열사의 성장세가 크게 두드러졌는데 대단위 투자가 예약된 하반기에도 큰 폭의 성장이 예상돼 전문업체와 의 각축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기존 PCB업체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MLB로 사업영역을 특화했던삼성전기는 상반기에 4백60억원(94년 상반기는 2백88억원)의 실적을 올려 MLB분야에서만큼은 대덕전자.코리아써키트.새한전자 등 전문업체들을 멀찌감치따돌렸다. 금성통신에서 사업을 이관받은 LG전자 역시 상반기에 단면.양면.MLB를 합쳐전년동기 4백45억원 대비 27.9% 늘어난 총 5백69억원의 매출을 올려 대덕(7 백99억원, 대덕전자.산업 합산)의 뒤를 이어 전체 PCB업계에서 2위 자리를굳히며 강세를 이어갔다.
이밖에도 삼성 계열의 단면 및 양면PCB업체인 청주전자와 대우계열 양면 및M LB업체인 남양정밀, 충북방적 계열 (주)심텍 등 대기업 계열사들도 외형면에 서 대덕.코리아써키트.새한전자를 제외한 하위권의 중견업체를 능가하는 수준에 올라있다.
이들 대그룹계열 PCB메이커의 약진은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전반적인 PCB기술 의 축적과 PCB시장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성장은 중견 PCB업체들의 입지를 그만큼 약화시켜 결국 PCB산업의 균형발전 을 저해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원판공급난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PCB업계의 양극화와 그룹계열 PCB업체들의 두드러진 약진 속에서 PCB시장의 호황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보인다. 그러나 전환기를 맞은 현PCB시장의 호황이 내실 강화를 통한 자연스런 현상이라기 보다는 일시적인 외부요인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호황을 2000년대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의 여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97년 이후 업계의 경쟁적인 설비증설로 인한 공급초과 우려가 현실로 드러날 것"으로 전망하며 "현재의 내수지향적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세트메이커들의 생산기지 이전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가격경쟁 위주의 마케팅정책을 품질위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 한다. 또한 고밀도 파인 패턴화.초박판화 등 핵심기술과 반도체 패키지기술의 급진 전에 대응한 신개념의 PCB제조기술,그리고 고부가 특수PCB에 대한 다각적인대책 마련 등 PCB업계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는 데서 근본적인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박.원판.잉크 등 PCB 관련 재료기술의 축적과 세트업체와의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체제 구축이 수반돼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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