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가운데 가장 뒤떨어진 부처로 지목되던 체신부가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부처의 하나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를 절감하게 한다. 70년대 말부터전자 정보, 통신산업기술이 제3의 산업혁명을 불러 일으키면서 체신부의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전자전화교환기를 비롯한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은 정보통신시장을 공급자 시장에서 수요자 시장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전화 교환(공급)용량이 급격히 늘면서 전화는 이미 희소상품의 범주에서벗어났고 수익성도 급격히 상승했다. 통신산업은 인기있는 업종으로 부상했고 감독부처인 체신부의 위상도 높아진 것이다.
정보통신분야의 과학기술 발전이 마치 행정부, 그것도 가장 낙후 부처로 인식되었던 체신부의 정책성공으로 비칠 만큼 다른 어떤 산업보다 빠른 성장발전을 거듭한 것이다. 그리고 정보통신 기술과 그 산업발전이 이제는 정부조직과 공무원 의식도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하부구조인 물질적 기초의 성장 이 상부구조인 제도와 사상의 흐름을 변혁시킨 것이다. 가히 변증법적 발전 의 모범 케이스가 되었다.
드디어 작년말에 우리정부는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명칭과 조직을 첨단화했다. 때문에 이름부터 첨단인식이 뚜렷하다. 기대한 것처럼 조직개편 후 3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정통부가 외국 정책자문업체 및국내 민간연구소에 정책자문을 구한 것이다.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도 특정분야의 학술연구용역 등에 대해서는 순수 민간기업체나 연구소 에 의뢰한 경우는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정통부가 발주한 정책개발은 특정 한 분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정부의 기본산업정책부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가 민간기업 또는 연구소의 정보 및 연구능력을 인정하고 정부 스스로는 뒤떨어져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없다. 더구나 정책개발자문(외주)대상기관이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관련기관이 아니고 순수한 민간연구소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장기통신정책수립 용역계약을 미국의 전문 용역업체인 아더 디 리틀(ADL)사와 체결하고, 정보통신관련 정책개발 용역계약은 국내의 "삼성경제연구소"와 체결한 것이 그 예다.
한편 정통부가 행정부처 가운데는 맨 처음으로 전자결재시스템을 도입하고 인터네트를 통해서 세계 각국의 최신 자료를 받고 있는 등 첨단부처 답게 업무의 정보화와 전산화에서도 타부처를 선도하고 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신선한 충격이다. 그러나 첨단적 변화가 모든 경우에 순기능 만을 약속하지 않는다. 일정한 한계가 있고 운용에 절도가 필요하다.
첫째는 외국이건 국내건 간에 민간전문연구소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모두 특정한개별자본(기업체 또는 기업집단)의 부설이거나 연계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기본정책 수립에 있어서 아무리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해도 부지불식간에 특정업체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게 된다. 더구나 정책수립과정에서 기본적인 정보를 가장 먼저 생산한 기관이 민간연구소이므로 차후에 정부가 자문내용과 다른 정책을 결정했다 해도 그 만큼의 정보 시너지효과를 얻는셈이다. 정부는 이점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둘째는 민간연구소가 일반정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연구업적과 축적 정보가 많더라도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기초자료(정보)를 사용하지 않을 수없다. 따라서 정책개발 과정에서는 매우 중요한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정부자료도 제공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민간연구소가 정부로 부터 정책개발연구 용역을 위촉받지 않더라도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정부의 자료를 수집할 수는 있겠지만, 때때로 그것은 위법적이거나 불법적일 수 있다. 따라서 그 정보의 가공사용에 매우 큰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제공받은 정보의 경우에는 그 가공사용이 용이해진다. 더구나 합법적으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기업 등은 상대적인 불이익(불공정)을 당한다. 정부의 각별한 주의와 대응이 필요하다.
셋째는 정책연구개발 용역사업 수행과정에서 맺어지는 민간연구소 직원과 공무원간의 인맥형성이 정부로 하여금 특정 개별자본의 종속화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는 정서상 제도와 규정보다 "얼굴이 일을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인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정책개발을 특정의 민간연구소에 위탁할 경우 민간연구소의 입장으로서는 정부로 부터 수탁하는 대가 즉 용역비 수입보다 인간관계(인맥)형성을 더 큰 수익으로 인식 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것이 자칫 정부와 산업의 유착을 가중시킬 우려를 낳게 한다. 정부는 이점을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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