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의 통신시장 개방압력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한 통신시장개방 압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키 캔 터 미무역대표부(USTR)대표는 최근 공로명외무장관에게 전화교환기등 통신망 장비의 인증제도 및 입찰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보도다.

미무역 대표부측은 지난 88년부터 국내에 공급해온 AT&T사의 국설교환기인5 -ESS의 인증내용을 최신 개발기종인 5-E2000모델에 그대로 적용해 별도의 인증절차없이 한국통신 구매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는 국제간의 무역질서와 한.미조달협정의 기본정신 자체를 무시하는 일방 적인 요구일뿐 아니라 정부의 특정업체의 제품에 대한 인증절차생략을 요구 한 것은 정부간 협상의제로서도 부적합한 것으로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미국측이 국산기종의 구매절차보다 자국제품의 구매인증과정을 유리 하게 해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하겠다. 미국측은 신개발기종인 5-E2000이 5-ESS의 개량형 모델이기 때문에 인증절차를 생략해 달라는 것인데 5-E2000 모델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분류돼 신제품 후속 조달절차를 밟아야 하는것이다. 이들 제품은 모델명만 비슷할뿐 전혀 새로운 기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인증절차면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한국통신의 인증절차 일정상 AT&T가 국내교환기 업체들보다 불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으로보인다. 국내교환기 업체들이 생산하는 TDX-10개량형 모델에 대한 한국통신의 인증이 지난해 3월에 시작돼 오는 9월경 완료될 예정인 반면 AT&T의 5-E2000의 경우는 지난해 11월에 인증을 신청, 금년내 완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잖아도 한국통신은 그동안 5-ESS기종을 구매해 왔다는 점과 최신제품을 도입한다는 점을 감안, 서류나 기자재심사절차중 생략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생략하는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해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관 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통신망은 국가의 기간시설인 만큼 그 장비 를 구매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비록 개량형 모델 조달의 경우라 하더라도 1년이상의 인증기간이 소요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행이다. 이같은 관행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뿐 아니라 미국의 인증절차는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스웨덴의 에릭슨사는 AT&T벨코어의 인증시험을 받는데 3년간 3백억달러나 되는 대가를 치른 사례까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연방통신위원회(FCC)는 최근 외국업체가 미국의 통신분야 사업에 대해 투자를 원할 경우 해당국이 미국업체에 시장을 개방할 경우에만 이를허가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또 이 규정은 외국인의 미국통신업체 지분소유 상한선도 정해놓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외국업체의 자국시장진출에 대해 까다로운 절차와 조건등을 내세워 제한하면서 외국에 대해서는 불합리한 요구와 압력을 가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이같은 대외 통상정책에 대해 의연한 자세로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이번에 일차적으로 한국통신의 교환기 입찰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현행 한.미간 조달협정 자체를 개정하려는 저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 미국은 이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통신시장을 포함한 다른 많은분야의 개방을 더욱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 및 경제계의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 9일부터 이틀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21세기위원회에서의 미국측 참석자 발언을 통해 확연히 반영되고 있다. 미국측은 우리나라에 대해 각종 규제완화와 시장개방을 촉구했다는 보도이다. 양국의 정부.의회.경제계.학계 등 각 분야 지도급인사들이 참석, 통상을 비롯한 양국의 현안을 토의한 회의임을 생각할 때 의도가 분명하다 하겠다. 캔터대표도 최근 미 현정부는 무역확대를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오늘부터 열리는 한.미통상장관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올것이 틀림없다. 미국은 언제나 국제추세를 들먹이면서 우리의 시장개방을 요구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우리는 미국기업도 국내시장진출을 위해서는 국내법규와 관행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어야 할것이다. 사정은 많이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최근 지적재산권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무역보복압력에 대한 중국의 역보복 강경자세와 현재의 접촉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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