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기술을 설명하는데 있어 다른 나라와 특별히 구별되는 특징의 하나는 연의 위치이다. 외국에서는 산.학협동이라면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산.학.연 협동이라고 하여 연이라는 글자가 하나 더 첨가된다. 이것은 국가 연구개발 능력의 수용체로서 산업체와 대학만치 정부산하 국공립연구기관과출연연구소의 비중이 우리나라에서는 막중하다는 것을 단면적으로 나타내는한증거이다. 또한 현대적 의미의 한국과학기술 발전에 있어 산이 성장하기 전에, 그리고 학이 제자리를 잡기전에 경제발전을 뒷받침하는 기술력을 KIST와 같은 연을 통해 정부가 집중 육성시킨 과학기술정책의 성공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과거 30년에 걸친 한국 경제발전사에서 연의 공로는 국제적으로도 높이 인정되고 있으며 다른 개발도상국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중진국으로 성장한 오늘의 한국에서 산도 학도 자기 기능을 발휘하게 되면서 연은 양면에서 도전을 받게 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대의발전에 따라 어쩌면 불가피한 현상이며 또 그래야만 연도 경쟁속에 올바른 성장을 계속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산.학.연을 총체적으로 다루어야 하는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이 대도를 걷지 못하고 정부 통제권 아래 있는 연의 세부사항에만 집착해 소도를 가는 일이 많다는 데 있다.
작년에 완성된 과학기술처의 "2010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안)"에 의하면 정부는 "사람"에 대한 계획에 있어서는 92년 현재 인구 만명당 20인 수준의 연구개발 인력을 2001년까지 현재의 미국과 일본 수준에 육박하는 37 명 수준으로 확보할 예정이나, 그 핵심이 되는 박사급 고급 과학기술 인력은 공급 부족 현상이 예견돼 대학원 교육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돈" 에 대한 계획에 있어서는 2001년까지 GNP 5% 수준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시킨다는 것이 89년 이래의 공식적인 정부 방침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92년 현재 2.17%로서 미국의 2.65%, 일본의 2.72%에 아직 못미치나 후발국 을 면키 위해 의욕적으로 이들 국가보다 더 투자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장기계획을 목표대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우리가 갖고 있는 작은 능력들을 한데로 모으는 것이 중요한데 근간에 언론 에 보도되는 것은 우려를 낳게 한다.
국가 장기계획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산.학.연밖에는 없다. 따라서 장기계 획속의 "사람"과 "돈"을 어떻게 마련해 산.학.연에 어떻게 나누어 담을까 하는 것이 과학기술정책의 요체가 된다. 자율적이어야 하는 산은 계획속에 억지로 담을 수 없는데다 대학교육만으로도 벅차하는 현재의 학을 고려할 때 과학기술계획에 있어 연은 더욱 중요해진다. 공공복지기술.원천기술.거대기 초과학 등이 새로운 영역이다. 이때문에 과학기술계의 개혁작업은 연의 개혁 작업과 동의어가 되곤 한다.
문제는 개혁의 길이다. 과학기술의 장기성이라는 내재적 속성에 견주어보면과학기술정책은 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때 결실을 보기 위해 지금 수립하는것이 옳은 일인데 장관이 바뀔 때마다 변화가 오는 것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음을 말한다. 모든 정부부처의 과학기술정책, 그리고 산.학.연을 전부 굽어보며 충분한 사전조사보고서(그리고 조사연구의 책임자가 분명한)와 이에 근거한 합의를 거치지 않은 개혁은 즉흥적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으며 과학기술의 대도는 아니다.
한 예로 고급인력이 배출되어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신규 교수채용에 20대 1이상의 경쟁이 다반사가 되고 박사후 연구원 제도가 인기가 있는 것은 사람을 담아줄 큰 그릇이 더 필요하다는 증거인데, 정부가 가진 유일한 그릇인 연은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용량을 유지할 경제적 가치가 있다. 갈수기에 대비해 댐을 건설하고 물을 저장해두는 것과 연의 능력을 보전하는 것은 같은 원리다.
다행히 한국에는 대도에 걸맞은 길 이름이 있다.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국 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하나다. 과학기술처 산하만이 아닌 모든 부처에 현존 하는 연은 물론, 계획되고 있는 연까지를 총괄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와 이에 응하는 보고서에 근거해 연을 큰 그릇으로 모으는 정책이 대도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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