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한국통신시장 개방확대 요구 배경

이번 미국 무역대표부(USTR) 미키 캔터 대표가 공로명외무장관에게 요구한 전화교환기 인증 제도및 입찰제도 개선 압력은 한마디로 국제간 교역질서와 한미조달협정 자체를 무시한 처사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이번에 미국측, 정확히 말해 AT&T가 노리는 부분은 단기적으로 한국통신의 교환기 입찰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되짚어보면 장기적으로 현행 한미간 조달협정 자체를 뜯어 고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현재 한국통신등 정부투자기관으로 국한된 조달 협정 대상 기관을 민간 기관까지 확대하려는 저의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국내 통신장비 시장 개방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이른바 성동격서의 전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이번 압력의 근저에는 현재 개량형 교환기 부문에서 AT&T측이 국내 교환기 업체들보다 일정상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미국측의 상황분석 이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G정보통신, 삼성전자등 국내 교환기 업체 들이 생산하는 TDX-10개량형 모델에 대한 한국통신 인증이 지난해 3월에 시작돼 오는 9월경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문제가 된 AT&T의 № 5-E2000 기종은 지난해 11월에야 인증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5-E2000의 경우에는 인증절차가 아무리 "초고속"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올해를 넘길 수 밖에없는상황이다. 미국측의 무리한 요구는 바로 이 대목이 출발점이다. 인증절차 자체를 생략 해 달라는 것이다. 이유는 5-E2000기종이 이전 모델인 5-ESS의 개량형 모델 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같은 미국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모델명만 유사할 뿐 전혀 새로운 기종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비록 개량형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1년정도의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대부분 국가의 관례다. 국가의 기간시설인 통신망 장비를 구매하는 데는 어느 국가건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통신의 교환기 인증 절차는 대략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는 최초 조달이다. 최초조달은 국내외적으로 시판중인 장비이기는 하지만 한국통신이 처음으로 조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 경우에는 서류 심사-기자재 검사-실제시험등의 모든 절차를 거치게 된다. 최초조달의 경우에짧아도 2년, 길게는 3년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두번째 조달방법은 연구 개발조달이다. TDX구매가 바로 이경우에 해당된다.

이는 시판되는 제품이 전혀없는 경우, 통신사업자가 제조업체.연구기관등과공동 또는 위탁으로 제품을 개발한 후 조달하는 방법이다.

세번째는 후속조달이라는 방법이다.이는 이미 조달하고 있는 제품을 계속해 서 조달하는 것으로 *개량 개선 조달과 *신규참여 조달로 구분된다.

개량.개선은 제품의 기본 골격에는 변화가 없는 대신 부분적인 기능 개선이 이루어질 때 실시하는 것으로 구매기관의 필요에 의한 경우와 장비업체들의 제안에 의한 경우로 나누어진다. 개량형 TDX-10이 바로 개량 개선 후속조달 방법으로 조달하게 되는 제품이다.개량 개선 조달의 경우에도 대략 1년 이상의 인증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행이다. TDX-10의 개량형 모델의 경우 지난해 3월부터 1년5개월이라는 기간이 인증에 소요된 경우다.

미국측이 문제를 삼은 5-E2000모델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분류돼 신제 품후속조달 절차를 밟아야하는 기종이다. 정식으로 모든 인증 절차를 거치게 되면 길게는 3년정도를 소요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AT&T는 이제품은 한국통신 인증을 지난해 11월에 신청,현재 절차를 밟고있다. 한국통신측은 그동안 AT&T의 5-ESS기종을 구매해왔다는 점을 참작, 서류심사나 기자재 심사절차들에서 생략 가능한 부분을 최대한 생략하는 "아량"까 지 베풀고 있는 실정이다. 신제품 조달로는 파격적으로 올해중 인증 절차를 모두 끝낼 방침인 것으로 알려질 정도다.

미국측의 주장은 이 제품의 인증 절차를 아예 기존 제품인 5-ESS에 준해 면제 해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결국 국내 교환기 업체들보다 훨씬 파격적인 특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내 통신업계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통신망 장비의 인증 절차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라"는 캔터 대표의 압력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신망 장비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고 말하고 있다.스웨덴 LM에릭슨이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AT&T 벨코어의 인증 시험에 3년동안 3백억 달러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룬 사례를 들었다.

국내 통신업계에는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산 통신장비 조달에 원칙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보다 대등한 입장에서 미국과의 통신시장 개방 협상에 대처해야한다는 여론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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