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환경이 바뀐다> 가정

영업실적으로 회사내에서 정평이 자자한 보험회사 직원 김영업(남.45)씨에겐 PC가 아내만큼이나 자상한 존재다.

어젯밤에는 달콤한 음악으로 종일 지친 노독을 풀어주더니 아침에는 출근시간에 맞춰 기상나팔을 울려준다.

서둘러 세면을 하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친 김씨의 하루 스케줄을 관리해주 는 것도 역시 PC이다.

김씨는 미리 PC에 입력한 스케줄을 확인한 후 이를 고속모뎀을 통해 회사내 박부장의 전자우편함에 발송하고 곧장 인천에 있는 고객을 찾는다. 김씨는자신의 스케줄 정보를 박부장뿐 아니라 조직계통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조 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상에 열어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외부 고객의 컴퓨터 접속 요구를 직원들이 알아서 접속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모양의 화상, 그래픽, 텍스트로 구성된 제안서를 고객에게 보여주니 고객은 이를 쉽게 이해하고 별다른 까탈을 부리지 않고 화재보험 가입 계약을 체결했다.

오늘도 손쉽게 한 건을 올린 김씨는 PC에 짜여진 일정에 따라 발길을 옮긴다. 김씨가 출근하고 나면 PC는 다시 김씨의 부인인 박부자(41)씨의 비서이자친구가 된다. 박씨는 이웃들에게 이미 증권통으로 알려져 있다.

적은 돈이나마 증권에 투자하는 재테크기술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박씨가 증권과 관련된 학과를 나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박씨의 전공은 돈과는 도저히 인연이 없을 것같은 동양미술이다.

박씨가 주위로부터 증권통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역시 충실한 비서인 PC를남편 못지 않게 활용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3년전 남편으로부터 전수받은 PC 이용기술이 이제는 스스로 "수준급"이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박씨는 증권회사에 연결된 PC를 통해 증권시세를 분석해 보고 나서 백화점 쇼핑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박씨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시내를 나갈 마음 은 없다. 화면상에서 서비스가 가능한 백화점이 아이콘 그림으로 표시돼 있다. 마우스로 아이콘을 작동시켜 백화점을 불러 피혁매장에 들어간다. 이어1 5가지의 실물 브랜드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한강"표 구두를 고른다음 마우스 로 "배달"이라는 버튼을 누른다. "결재"버튼을 눌러 나타난 대화상자에는 비자카드 를 선택한다.

그리고 박씨는 CD롬 드라이브에 비디오CD 타이틀을 꼽았다. 최근 비디오CD로 출시된 "스페셜리스트"라는 타이틀이다. 이미 서울의 4대문안 지역에서는 주문형비디오 VOD 서비스가 시작됐지만 이곳 신도시는 아직 1~2년은 더 있어야가능해질 전망이다. 아파트상가에서 비디오CD를 빌려오는 것이 아직 불편하지만 과거 VHS방식의 비디오테이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한 화상 과 음질을 제공받을 수 있다.

실베스타 스탤론과 샤론 스톤의 격렬한 키스신이 막 시작하려 할 때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덜컹 문을 열어 버린다.

그제서야 아들녀석이 인터네트로부터 자료를 받아 논문을 완성키로 한 날이 오늘이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PC를 아들에게 넘겨준다.

국문과에 다니는 김군(21)은 인터네트로부터 자료를 다운로드받아 2시간만에 간단히 "세계의 민속요 비교"라는 논문을 완성한다.

이상은 PC를 이용 종합온라인 서비스가 가능한 1~2년후 일반 가정 분위기를가상으로 꾸며 본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현재도 반드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 PC통신망에 대한 각종 규제가 완화되어 "DNS" "하이네트- P" "포스네트" 등 통신망의 일반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통신도 96년에멀티미디어 PC통신을 가능케 할 T3급의 전용통신망을 개설할 예정으로 있다.

또 내년부터 케이블TV방송이 본격적인 운용에 들어감에 따라 이 망을 PC통신 망으로 전용할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이다.

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는 PC의 성능 및 보급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이같은 PC에 생명을 불어넣을 CD롬 타이틀의 개발 및 보급도 큰 폭으로 성장 하고 있다.

아직도 헤쳐나가야 할 기술적인 난제들이 이러한 "가정의 혁명"을 가로막고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미 혁명의 세계를 문틈으로 들여다보고 전율하고 있다. 우리의 가정환경을 송두리채 바꿔버릴지도 모를 멀티미디어 PC와 공중통신망 이 지금 우리 눈앞에 그 웅대한 자태의 끝자락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PC와 공중통신망이 일반화될 경우 도래할 이런 엄청난 편 리성의 뒤안에 복병처럼 자리잡고 있는 가족공동체의 왜곡현상 등 역작용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PC는 인간의 요구에 따라 일을 처리해줄 뿐 정을 주지 는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진정한 가정의 혁명은 이같은 왜곡현상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정신적 장치가 마련된 후에나 가능할지 모른다.

<이균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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