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철 교수의 지역혁신 대전환] 〈5·끝〉초광역 AX, 지역혁신의 경계를 넓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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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철 국립부경대 공과대학장

한 척의 선박은 특정 도시의 조선소에서 완성된다. 그러나 배를 만드는 생태계는 결코 한 도시 안에 있지 않다. 강판과 엔진, 각종 기자재와 소프트웨어(SW)는 여러 지역 기업이 나누어 만들고, 항만과 시험·인증 시설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산업은 이미 시·도 경계를 넘나드는데, 연구개발과 기업 지원은 여전히 각 지자체 안에서 따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 지역마다 쌓인 기술과 데이터가 서로 이어지지 못해, 산업 현장의 과제를 함께 풀기 어렵다.

산업의 인공지능전환(AX)은 이 문제를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인공지능(AI)은 데이터를 통해 배운다. 그런데 한 공장이나 한 도시의 데이터만으로 만든 AI는 조건이 다른 현장에서는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대형 컴퓨터와 현장 시험시설을 한 지자체가 모두 갖추기도 어렵다. 반면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은 업종이 달라도 용접, 도장, 설비 점검처럼 비슷한 작업이 많다. 여러 지역의 현장 데이터를 함께 쓰면 비용을 줄이면서 더 정확한 AI를 만들 수 있다. AI를 직접 개발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도 공동으로 만든 모델을 자기 현장에 맞게 조정해 쓸 수 있다.

정부가 전국을 5개 권역과 3개 특별자치도로 묶는 '5극 3특' 전략을 추진하고, 지난 8월 권역별 성장엔진을 발표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다만 초광역 협력을 지역마다 산업을 나눠 갖는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인접 지역이 비슷한 산업을 각자 키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비슷한 시설과 사업이 연결되지 않은 채 따로 운영되는 것이다. 초광역 AX의 핵심은 산업을 쪼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풀어야 할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의 역량을 묶는 데 있다.

문제 중심의 협력은 이미 현장에서 시작되고 있다. 울산과 전남광주는 자동차 제조 현장에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을 적용하기 위해 2027년부터 5년간 총 580억원 규모의 공동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로 다른 권역의 지역들이 손을 잡은 것은 같은 산업 과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강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남의 정밀 제조 역량과 전북의 공장 운영 기반을 잇는 피지컬 AI 연구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권역별 성장엔진이 정해져도 데이터와 현장 시험 과제는 권역을 넘어 연결될 수 있다. 5극 3특이 또 다른 칸막이가 되지 않으려면, 초광역 AX의 경계는 권역의 경계에서도 멈춰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협력이 오래 지속되려면 두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하나는 지역 간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규칙이다. 데이터 공유·활용 범위와 성과 배분을 미리 정해야 기업이 안심하고 데이터를 내놓는다. 고가의 컴퓨팅 자원과 시험 장비도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함께 쓸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예산과 성과를 함께 묶는 방식이다. 내년 1월부터 초광역 협력사업을 지원하는 전용 예산인 초광역특별계정이 운영된다. 그러나 예산을 시·도별로 나눠 쓰고 성과를 각자 가져가거나 특정 지자체가 독점하면 공동사업은 이름만 남는다. 예산과 평가는 참여 지역이 함께 세운 목표에 맞춰야 한다. 새로 설치될 초광역추진협의체 역시 단순 회의에 그치지 않고, 필요한 기술과 자원을 적재적소에 연결해야 한다.

지역혁신의 경계를 넓힌다는 것은 행정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 아니다. 산업과 데이터가 실제로 움직이는 범위에 맞춰 예산과 평가의 방식까지 바꾸는 일이다. 초광역은 지역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지역이 더 멀리 닿게 하는 일이다. 모든 것을 내 지역 안에서 해결하려는 고집을 내려놓을 때, AX의 성과는 한 도시를 넘어 권역의 기업과 일자리, 나아가 국가 경쟁력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서용철 국립부경대 공과대학장 suh@p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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