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소 섬유기업들의 디지털 전환(DX)에 속도를 낼수 있는 제조혁신 거점이 마련됐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KTDI)은 산업통상부와 대구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섬유설계부터 제직에 이르는 전 과정을 데이터 기반으로 자동화한 '지능형 마이크로팩토리' 구축을 최근 완료하고 본격적인 가동에 돌입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에 가동을 시작한 마이크로팩토리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이른바 ABB 첨단 기술을 융합한 원스톱(One-Stop) 제조혁신 인프라다.
가상 디지털 직물설계 솔루션, 자동화 제직 준비 및 직물 생산 설비, 베테랑 섬유 전문인력의 1대1 밀착 기술지원이 기획 단계부터 생산, 현장 적용까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첨단 ICT 기술을 섬유산업에 이식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KTDI의 실행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기존 섬유 제조 공정에서는 원단 설계와 사이징, 통경, 정경, 제직 테스트가 각기 다른 기업에서 분절적으로 진행됐었다. 이로 인해 바이어의 오더 수주를 위한 샘플 제작과 신제품 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파편화되어 있던 설계 및 생산 정보를 연계하는 '데이터 기반 제조 환경'인 마이크로팩토리가 본격 가동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중소 섬유기업들은 막대한 자체 설비 투자 없이도 가상 환경에서 물성과 외관을 즉시 시뮬레이션하고, 곧바로 다품종 소량의 시험 생산까지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수작업에 따른 오류를 개선하고 신제품 개발 속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셈이다.
원스톱 기업지원의 핵심 출발점은 가상 디지털 직물설계 솔루션 '메타패브릭(MetaFabric)'이다. 실물 원단을 짜기 전 컴퓨터 화면상의 3D 시뮬레이션으로 직물을 설계해 외관과 물성을 미리 확인하는 혁신 프로그램이다. 특히 바이어와의 신제품 개발 협의 단계에서 가상 원단으로 실시간 디자인과 스펙을 조율할 수 있어 실제 오더 수주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메타패브릭의 가상 설계 데이터는 마이크로팩토리 내 구축된 첨단 자동화 직물 생산 라인으로 즉각 연동된다. KTDI는 ▲자동 사이징기 ▲자동 정경기 ▲자동 통경기 ▲자동 제직기로 이어지는 촘촘한 하드웨어 라인업을 완성했다.
실 표면에 풀을 먹이는 자동 사이징기는 실 한 가닥 단위로 정밀하게 작업하는 '단사 방식'을 채택해 최소한의 원사만으로도 제조 테스트가 가능하다. 대량의 원사를 미리 준비해야 했던 초기 비용 부담을 덜어주어 신제품 개발을 주저하던 중소기업들에 맞춤형 해결책이 될 전망이다. 이어지는 최첨단 자동 정경기는 12개 원사 공급부를 갖춘 고도화된 크릴 시스템과 연계하여, 실제 제직 전 다채로운 원사 혼합과 복잡한 배색 등 독창적 디자인을 자유롭게 테스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준비된 정경 빔(Beam)은 자율주행 지게차(AGV)를 통해 '자동 통경기'로 안전하게 운반된다. 직기의 경사 방향에 실을 정해진 순서대로 끼우는 통경은 고숙련자의 수작업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가장 까다로운 공정이었다. 원단 조직 변경 시 기업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으나, KTDI는 기존 최소 2명 이상 투입되던 작업을 1명이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자동화해 복잡한 디자인 원단도 지체 없이 생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최종 공정인 자동 제직기는 '디지털 설계와 실물 직물 생산의 실시간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를 완벽히 구현해 낸다. 인프라를 활용하는 기업들은 가상 설계 솔루션에서 검토한 조직과 디자인이 실물 원단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즉각 확인하고, 제직 과정에서 발견되는 개선 사항을 설계 데이터와 작업 조건에 곧바로 피드백해 수정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설비 가동 속도와 온도 등 핵심 조건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지능형 시스템도 함께 구축되어, 까다로운 친환경·기능성 원사에 딱 맞는 최적의 생산 조건을 데이터 기반으로 정확히 도출해 낸다.
마이크로팩토리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기업 수요에 따라 전체 라인을 활용하거나 특정 공정만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철저히 기업 친화적인 유연성을 바탕으로 이용 문턱을 대폭 낮췄다. KTDI는 향후 자사 공장에 이 같은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섬유 전문인력을 투입, 장비 도입부터 안정적 운영까지 전 주기를 밀착 지원할 계획이다.
이러한 전방위적 인프라 지원의 효과는 벌써 구체적인 수출 성과로 입증되고 있다. 기능성·산업용 원단 전문기업 티엔아이는 올 상반기 메타패브릭 솔루션을 도입해 기존 수기 직물설계 데이터를 전면 디지털화하며 설계 기간을 1개월가량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제작한 가상 원단 이미지로 미국 바이어와 온라인 상담을 진행하며 실시간 수정을 거친 끝에 수출 계약 성사라는 쾌거를 거두었다. 지난 9월에는 마이크로팩토리 인프라를 직접 활용해 샘플 원단을 제작했으며, 현재 미국 바이어 측과 약 8만 달러 규모의 추가 메인 오더 수주를 위한 실무 협의를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설계 기반 인프라가 단순한 생산 지원을 넘어 중소기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에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실증 사례다.
김성만 KTDI 원장은 “이번에 구축된 마이크로팩토리는 개별 기업의 필요에 맞춤형으로 응답하는 유연한 개방형 공간이자, 미래형 스마트 공장 도입을 앞당길 지능형 자동화 시스템”이라며 “기업이 비즈니스에 필요한 수준으로 언제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지역 섬유기업들이 굳건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대구=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