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부호들, '금' 들고 싱가포르로… “연금 위기 낮고 방위력 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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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쟁과 국가부채,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 중동의 고액자산가들이 금 보관처로 싱가포르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민간 금 보유량은 2014년 이후 약 16배 증가해 지난해 800톤을 넘어섰다.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유럽 투자자들이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귀금속 업체들은 올해와 내년에도 보유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대형 귀금속 보관시설 '더 리저브(The Reserve)'를 운영하는 그레고르 그레거슨은 17년 전 침대 밑에 은을 보관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6층 규모 금고는 연간 세계 금 공급량의 약 10%, 은 공급량의 약 30%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했다.

싱가포르 내 고액자산가 자문사들도 비슷한 흐름을 체감하고 있다. 현지 패밀리오피스 파로캐피털 측은 기존에 다른 국가에 실물 금을 보유하던 부유층이 일부를 싱가포르로 옮기는 한편, 처음으로 실물 금을 사들이는 가문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금값 상승과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난 데다, 정부부채 증가와 전쟁 위험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면서 금의 안전자산 매력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싱가포르는 현재 민간 고보안 금고 2곳에서 최소 2200톤의 금을 보관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더 리저브와 '아시아의 포트녹스'로 불리는 르 프리포트는 각각 500톤, 1700톤을 수용할 수 있다. 르 프리포트의 지하 금고는 최근 금 보관 수요가 급증하면서 거의 가득 찬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더 리저브의 금 보관 프로그램 고객 자산도 2020년 초 이후 3배로 늘어 지난 9월 8.6톤에 달했다. 이 가운데 약 90%가 해외 고객 물량이다.

부유층이 싱가포르를 찾는 배경에는 정치·재정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있다. 그레거슨은 “30~40년 동안 금을 보관하려는 사람들은 부유하고 연금 위기 가능성이 낮으며 방위 역량도 갖춘 국가를 선호한다”며 “싱가포르가 그런 곳”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의 문의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귀금속 업체 J. 로트바트앤드코의 싱가포르 지사는 지난 1년간 서방 고객의 온라인 문의가 3배 늘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많은 관심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캐나다와 영국, 호주가 뒤를 이었다.

스위스에서 싱가포르로 금을 옮기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현지 귀금속 플랫폼에 따르면 유럽 고객의 약 40%가 보유 금 일부를 스위스에서 싱가포르로 이전했거나 신규 매입 금을 싱가포르에 보관하기로 했다. 러시아 제재 자산 동결 이후 스위스의 중립성에 대한 일부 투자자들의 인식이 달라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싱가포르 정부도 이를 금 거래 허브 육성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거래소는 올해 말까지 금 장외거래 청산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며, 싱가포르통화청은 외국 중앙은행과 국부기관을 위한 금고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실물 투자용 귀금속에 투자하는 일부 펀드와 패밀리오피스에 대한 세제 혜택도 확대했다.

다만 세계 금 시장에서 싱가포르의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다. 올해 8월까지 싱가포르의 금 수입량은 전년 대비 44% 증가한 171톤이지만, 세계 최대 금 거래 중심지인 런던의 보관량은 싱가포르의 수십 배에 달한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 연계 창고의 금 재고도 약 730톤 수준이다.

그럼에도 현지 금융사들은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노무라는 중동 고객 등의 요청에 따라 싱가포르에서 실물 금 보관 서비스를 시작했고, OCBC도 산하 프라이빗뱅킹 고객들의 실물 금 보유량이 지난해 말 이후 40% 넘게 증가하자 관련 사업을 확대했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재정·정치적 불안이 지속될 경우 금 보관처를 지역별로 분산하려는 고액자산가들의 움직임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레거슨은 “자산을 분산하려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좋다”며 “싱가포르를 믿을 만한 보관처로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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