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사가 축적한 인공지능(AI)과 시뮬레이션 기술을 방위·로봇·재난안전·교육·의료 등 실물 산업으로 확장하고, AI 활용 확대에 따른 저품질 콘텐츠와 저작권 문제에 대응할 정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 주최로 열린 'AI 시대,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도약과 정책 과제' 토론회에서는 AI가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산업의 제작 방식과 사업 영역을 빠르게 바꾸는 가운데 산업 진흥과 창작자 보호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게임 분야에서는 AI가 단순 제작 효율화 도구를 넘어 산업 외연을 넓힐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됐다. 게임사가 가상공간에서 축적해온 시뮬레이션과 실시간 3차원(3D), AI 기술을 피지컬 AI와 결합하면 기존 게임산업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승미 삼정KPMG 상무는 게임산업이 가상세계 안에서 이용자 입력과 결과를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해왔다는 점에서 피지컬 AI와 높은 연관성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크래프톤의 로보틱스 진출과 엔씨AI의 국방 분야 협업 등 게임사가 보유한 기술이 실물 산업으로 확장되는 사례도 소개했다.
정부 지원 범위도 제작 단계에서 산업 확장으로 넓힐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성준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신기술본부장은 현재 콘진원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피지컬 AI 분야를 게임산업 지원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게임사의 시뮬레이션과 실시간 3D 기술을 방위·재난안전·교육·의료·로봇 분야와 연결해 새로운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다. 김 본부장은 현재 AI 대전환을 “산업 경계의 확장과 창작 공정 혁신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평가했다.
콘진원은 올해 75억원 규모 AI 전환(AX) 지원사업을 통해 약 500개 콘텐츠 기업의 AI 활용을 지원하고 있다. 기존 게임 제작지원 사업에서도 AI 활용을 허용했으며, 올해 85개 프로젝트가 제작 과정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
AI가 게임 제작 문턱을 낮추면서 저품질 콘텐츠가 대량으로 유통될 가능성은 새로운 과제로 제기됐다.
강 상무는 AI를 활용하면 빠르고 효율적인 제작이 가능하지만 저품질 게임이 함께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게임 슬롭(Game Slop)'이 확산되면 이용자가 개별 게임을 넘어 게임이라는 콘텐츠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고 영상 등 다른 여가 콘텐츠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제성원 뤼튼테크놀로지스 이사도 “제작이 용이해지고 누구나 창작을 하게 될수록 저품질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면 AI가 인간 창작자를 곧바로 대체할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제 이사는 사람이 만들던 설정을 AI가 생성하는 실험에서도 일정 수준의 결과는 얻었지만 인기 창작자의 결과물에는 미치지 못했다며 기획과 발상, 창의성은 여전히 인간의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AI가 모든 제작 과정을 대신하기보다 사람과 AI가 역할을 나누는 '하이브리드 제작' 환경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AI 활용 경험을 보유한 선행 기업의 사례를 공유하고 품질 관리 기준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과 AI 생성물 표시도 핵심 정책 과제로 꼽혔다. 이용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현행 저작권법이 AI 학습을 위해 대규모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하는 행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산업 경쟁력을 이유로 저작물 이용을 지나치게 폭넓게 허용하면 창작자의 권리가 훼손될 수 있지만, 반대로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AI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정교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AI 생성물 표시 역시 단순 표시 의무를 넘어 실제 이행 여부를 검증할 기술과 유통 플랫폼의 책임, 공인된 기준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김재원 의원은 “AI를 얼마나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과정에 AI를 활용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창작과 기술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콘텐츠산업 경쟁력을 높이면서도 창작자가 만든 가치와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기준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며 관련 입법과 정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