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대기업 혼자 연구하지 않는다…중국 '혁신연합체' 산업화 문법

[기고·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기업·대학·중소기업·사용자·금융을 한 과제에 묶는 공동기술 운영체계

중국의 산학연 협력에는 수많은 협약과 연맹이 있다. 그러나 이름만 함께 올린 컨소시엄은 기술 위험을 나누지 못한다. 대기업은 과제를 가져가고, 대학은 논문과 특허를 만들며, 중소기업은 납품 기회를 기대하지만 공동기술이 제품과 조달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국이 혁신연합체(创新联合体)를 산업정책 핵심 조직으로 키우는 이유는 공동연구를 '참여기관 목록'이 아니라 자금·지식재산권·실증·구매를 함께 운영하는 상설 구조로 바꾸기 위해서다.

혁신연합체는 주도기업이나 고급 혁신플랫폼이 대학·연구기관·중소기업·사용자·금융기관을 묶어 공통기술과 핵심부품을 개발하는 조직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중국 혁신연합체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연구자원을 모으는 협의체가 아니라 산업 전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기술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운영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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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연합체는 무엇이 다른가

체인주기업이 공급망 조달·품질·금융을 조직하는 주체라면, 혁신연합체는 특정 기술 과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연구개발 조직이다. 제조업혁신센터가 업계 공통기술과 시험·표준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기관이라면, 혁신연합체는 명확한 목표와 기간을 가진 과제형 네트워크에 가깝다. 세 제도를 구분해야 중국 산업조직이 중복된 명칭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 조합이라는 점이 보인다.

왜 대기업 혼자 연구하지 않나

첨단산업 병목은 한 기업 내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모델·센서·감속기·배터리·소재·안전·현장데이터가 함께 필요하고, 신약은 기초연구·임상·생산·보험과 병원이 연결돼야 한다. 대기업이 모든 요소를 직접 개발하면 시간과 비용이 커지고, 중소기업은 수요와 시험환경을 얻지 못한다. 대학은 산업의 실제 사양과 양산조건을 알기 어렵다.

중국 정부가 '기업이 혁신의 주체'라고 강조하는 의미도 단순히 기업 연구개발비를 늘리라는 것이 아니다. 최종 제품과 고객을 아는 기업이 문제를 정의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이 원천·공통기술을 제공하며, 중소기업이 부품과 전문기술을 맡고, 지방정부와 금융기관이 검증·자본·공간을 지원하도록 역할을 재구성하라는 뜻이다.

산시성 위린(陕西榆林)은 30개가 넘는 혁신연합체에 약 200개 기관을 묶어 에너지·화학·장비 분야 공통기술과 사업화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참여기관 연구개발 투입은 약 6억800만달러, 기술계약액은 약 26억5500만달러를 넘었다. 2025년에는 23차례 기술·투자 설명회를 열어 120개 프로젝트를 연결하고 58개를 현지에 정착시켰으며, 계약액은 약 9000만달러였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과제·기술거래·투자·정착을 한 운영체계 안에 묶었다는 점이다.

저장성 후저우와 원저우도 주도기업이 대학·연구기관·상하류 기업을 묶는 혁신연합체를 확대하고 있다. 원저우는 2025년 41개의 중점 산업사슬 혁신연합체를 새로 등록하면서 기술 수요는 기업이 제시하고, 주요 과제는 기업이 주도하거나 실질적으로 참여하도록 요구했다. 개별 도시가 모든 기술을 보유하기보다 수요기업을 중심으로 외부 연구자원과 전문기업을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연합체는 다섯 개 계약으로 움직인다

첫째는 문제계약이다. 주도기업과 사용자가 해결해야 할 성능·원가·시간·인증조건을 명확히 한다. '인공지능 개발'이나 '로봇 국산화'처럼 넓은 목표가 아니라 어떤 공정에서 어떤 지표를 달성할지를 정해야 한다.

둘째는 자금계약이다.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주도기업·참여기업·지방정부와 투자기관이 단계별로 자금을 낸다. 공공자금은 한 기업의 전용제품보다 여러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공통기술, 시험장비와 표준에 집중한다.

셋째는 지식재산권 계약이다. 기존 특허는 원소유자에게 남기고 공동성과는 기여도·비용·활용범위에 따라 소유권과 사용권을 나눠야 한다. 주도기업이 결과를 구매하지 않을 경우 중소기업과 대학이 다른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연구가 대기업의 기술흡수 통로로 변질된다.

넷째는 실증계약이다. 사용기업과 산업단지가 생산라인·병원·도로·발전소 같은 현장을 제공하고, 실패와 안전 책임을 나눈다. 기술이 연구실에서 통과해도 실제 현장 속도·오염·온도·작업자와 규제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는 구매·확산계약이다. 마일스톤을 통과한 기술을 주도기업이 우선 검토하고, 다른 회원기업과 공급망에 확산할 수 있는 절차를 둔다. 공동연구가 시장과 연결되지 않으면 연합체는 정부과제 수주조직으로 끝난다.

중국의 혁신연합체는 어떻게 움직이나

중앙정부는 산업별 공통목표와 제도, 대형 국유기업 역할을 정한다. 지방정부는 연합체 사무국, 공동장비, 파일럿 시설, 인재와 펀드를 지원한다. 체인주기업과 국유기업은 문제·데이터·공정·구매망을 제공하고, 대학·연구기관은 장기기술과 인력을 공급한다. 중소기업은 전문부품과 빠른 실험을 맡는다.

위린의 운영은 혁신연합체가 연구비 배분기구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연합체는 기술 수요를 발굴하고 공동과제를 만든 뒤 기술계약·로드쇼·사업화·기업 정착까지 추적한다. 지방정부는 공동장비와 정책금융, 기술거래와 공간을 제공하고, 기업은 자금·공정·데이터와 구매조건을 부담한다.

후저우에서는 기업이 기술문제를 내고 대학·연구기관이 공동으로 해결하는 연합체와 과학기술 부사장 제도가 함께 움직인다. 원저우는 산업사슬별 연합체를 통해 기업수요를 과제로 전환하고, 여러 학교·연구기관과 협력사를 묶는다. 혁신연합체가 지역 산학협력의 명칭이 아니라 실제 산업문제 공동 운영조직으로 기능하려면 기업의 현금투입과 현장 제공이 전제돼야 한다.

또 다른 흐름은 주연합체 아래 기술영역·산업사슬별 하위연합체를 두는 방식이다. 상위조직은 전략과 공용 인프라를 관리하고, 하위조직은 구체적인 제품·공정과제를 수행한다. 참여기관 수를 늘리는 대신 누가 어떤 문제와 비용, 장비와 구매를 책임지는지 층별로 나누려는 시도다.

혁신연합체가 일반 산업연맹과 다른 지점은 '공동자산'을 만든다는 데 있다. 산업연맹은 정보교류와 정책건의, 표준 논의를 할 수 있지만 연합체는 공용 장비, 데이터세트, 시험방법,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공동특허를 축적해야 한다. 참여기업이 바뀌어도 공통기술이 남아야 산업 인프라가 된다. 중국 지방정부가 연합체와 제조업혁신센터, 파일럿 플랫폼을 함께 배치하는 이유도 연구조직과 검증설비를 분리하지 않기 위해서다.

운영재원도 단계별로 달라진다. 초기에는 지방재정과 주도기업이 공용 인프라와 과제비를 부담하고, 기술이 성숙하면 회원기업 사용료·공동개발비·라이선스 수익과 민간투자 비중을 높인다. 영구적으로 보조금에 의존하면 회원사는 수요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된다. 공공자금은 위험이 크고 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단계에 집중하고, 반복 가능한 서비스와 제품은 시장가격으로 전환해야 한다.

금융기관 참여도 단순 대출을 넘어선다. 은행과 보험사는 연합체가 축적한 시험데이터·구매의향·특허와 표준을 기업의 신용평가에 활용할 수 있다. 벤처펀드는 개별 스타트업 기술만 보지 않고 주도기업 사용계획과 공급망 진입 가능성을 함께 본다. 기술위험이 공동플랫폼에서 검증되면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주도기업의 구두 약속만 있고 구매조건이 불명확하면 연합체 참여가 투자신호가 되지 못한다.

연합체는 인재양성에도 영향을 준다. 대학 연구자가 기업 장비와 데이터를 사용하고, 기업 엔지니어가 대학의 원천기술과 실험설계를 배우며, 학생이 실제 과제에서 훈련된다. 중국이 혁신연합체와 산교융합공동체를 연결하려는 것은 연구개발 조직과 인력공급을 함께 설계하기 위해서다. 연구성과가 제품으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와 졸업생의 기술이 산업수요와 맞지 않는 문제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풀려는 시도다.

대표 사례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참여기관이 많아질수록 의사결정은 느려지고, 공통기술 범위가 넓어져 책임자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주도기업이 바뀌거나 경영실적이 악화되면 연합체 전체가 흔들린다. 지방정부가 단기간 성과를 요구하면 장기 공통기술보다 시연 가능한 제품에 자원이 몰린다. 따라서 연합체는 기술위원회와 투자위원회, 사용자위원회의 역할을 나누고 외부평가와 정기적인 구조조정을 받아야 한다.

주도기업은 ‘왕’이 아니라 운영자다

체인주기업이 연합체를 이끈다고 해서 모든 권한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도기업 장점은 시장과 제품일정, 품질기준을 안다는 데 있다. 그러나 과제를 자사 구매조건에만 맞추고, 중소기업 기술을 낮은 가격에 흡수하거나, 대학 성과를 독점하면 연합체 다양성이 사라진다.

따라서 연합체에는 중립적인 사무국과 기술위원회, 지식재산권·이해상충 규칙이 필요하다. 주도기업은 문제와 현장, 일정과 일부 자금을 책임지고, 정부는 공정한 참여와 공통기술 개방성을 관리해야 한다. 대학은 논문보다 산업 마일스톤을, 중소기업은 단기 납품보다 핵심기술과 확장권을 확보해야 한다.

연합체 성과도 회원 수와 행사 횟수가 아니다. 공동특허와 표준, 파일럿 통과율, 첫 구매, 수입대체, 후속 민간투자와 다른 지역·기업으로의 확산이 중요하다. 공동연구 결과가 주도기업 내부보고서에만 남으면 산업 공통기술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연합체는 사업 종료 뒤에도 운영돼야 한다

연합체가 정부과제 기간에만 움직이면 공통기술과 장비, 데이터는 다시 기관별로 흩어진다. 공동 파일럿 시설의 이용료, 기술서비스, 라이선스, 교육과 회원분담금처럼 지속 가능한 운영수익이 필요하다. 주도기업이 바뀌거나 시장이 침체돼도 운영사무국과 공용자산이 남아 후속기업과 과제를 연결해야 한다. 중국의 일부 지역이 주연합체 아래 산업별 하위연합체를 두는 것은 정책과제의 종료가 곧 조직의 해산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도다.

병목은 이해상충과 '연합체 인플레'다

첫째, 이름만 연합체인 조직이 늘어날 수 있다. 지방정부 과제와 보조금을 받기 위해 기관을 모으고, 실제 자금·인력·현장을 투입하지 않는 경우다. 상설 사무국과 공동예산, 마일스톤, 탈퇴·중단 규칙이 없는 연합체는 협약식에 머문다.

둘째, 주도기업 지배력이다. 대기업이 기술사양과 평가, 구매를 모두 통제하면 중소기업은 하청업체가 되고 대학은 용역기관이 된다. 공동기술과 기업 전용기술을 구분하고, 결과를 다른 시장에 사용할 권리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 지식재산권 복잡성이다. 여러 기관의 기존특허가 결합되면 하나의 제품을 출시할 때 라이선스와 책임이 불명확해질 수 있다. 특허풀이나 공동라이선스, 표준계약이 필요하다.

넷째, 자금 지속성이다. 정부과제가 끝난 뒤 주도기업과 회원사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플랫폼이 사라진다. 기업 현금투입, 구매와 외부매출을 단계적으로 늘려야 한다.

다섯째, 지역보호주의다. 연합체가 특정 지역기업만 참여시키거나 회원사 본사 이전을 요구하면 우수기술과 전문기업이 배제된다. 공통기술은 지역에서 검증하되 전국적으로 참여·확산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컨소시엄보다 ‘상설 운영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산학연 과제를 참여기관 수로 평가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 수요기업 현금부담과 데이터·설비 제공, 지식재산권, 구매검토와 중단조건을 협약에 넣어야 한다. 여러 부처가 비슷한 컨소시엄을 만드는 대신 산업별 공통기술 플랫폼을 장기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는 연합체의 건물보다 현장과 고객을 제공해야 한다. 반도체 공정, 조선소, 병원, 물류센터와 에너지설비를 공동 실증에 열고, 다른 지역 대학과 기업도 참여하게 해야 한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중소기업 기술을 평가하는 심사자에서 벗어나 문제·자금·엔지니어·구매망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공동과제 전담조직과 기술사업화 전문인력을 두고, 연구자가 기업 일정과 품질체계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금융권과 벤처캐피털은 연합체 가입 자체보다 수요기업의 공동투자, 파일럿 데이터와 구매계약을 실사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공동개발이 독점계약으로 묶이지 않도록 다른 산업·지역에 기술을 판매할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중국의 혁신연합체는 대기업을 더 강하게 만드는 제도일 수도 있고, 산업 공동기술을 넓히는 플랫폼일 수도 있다. 차이는 누가 문제를 내고, 돈과 현장을 부담하며, 지식재산권과 시장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산업계가 물어야 할 질문은 산학연 컨소시엄을 몇 개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참여기관들이 정말 같은 기술위험과 첫 시장을 공동으로 부담하고 있는가.

박지민 36kr코리아 공동 대표 3guowill@krstar.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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