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콘텐츠 산업 위기진단] 〈3〉유료방송시장, 콘텐츠 친화 정책 기조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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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서울여대 교수

대한민국 유료방송 정책의 무게중심은 '플랫폼'에 쏠려왔다. 케이블TV에서 위성방송, IPTV로 이어지는 플랫폼 산업을 육성하면 방송산업이 진흥할 것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정책의 기본값으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료방송 가입자 수와 시장점유율은 정책 성과의 핵심 지표였고, 규제 완화의 수혜 역시 대부분 플랫폼 사업자에게 돌아갔다.

이러한 플랫폼 편향 정책은 정부 조직 구조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유료방송사업자를 소관하는 부서는 과(뉴미디어과)로 존재하지만, 방송콘텐츠의 제작·공급을 담당하는 PP를 소관하는 '과' 단위 조직은 없다. PP 관련 업무는 '팀(방송채널진흥정책팀)'에서 맡고 있으며, 그마저도 홈쇼핑 업무가 대부분이다. 소관 부서의 위상은 곧 정책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콘텐츠 산업 진흥 업무를 책임 있게 관리하려면 PP 전담 부서를 '과'로 승격하고 조직 규모와 정책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 만약 PP 전담 부서 신설이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 콘텐츠 진흥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 아래에라도 PP를 전담하는 조직을 두어 정책 역량과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 조직의 비대칭은 정책 논의 구조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콘텐츠 대가산정 기준, PP 평가제도 등 유료방송사와 PP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의제가 뉴미디어과 주관하에 수년간 논의되어 왔다. 한쪽 이해당사자를 담당하는 부서가 양측의 이해를 조정하는 구조에서 균형 잡힌 결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PP 산업 진흥을 전담하는 부서가 논의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주도해야 한다. 대가를 지불하는 측이 협상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받는 측이 우위를 갖거나 최소한 대등한 지위에서 협의할 수 있어야만 정당한 콘텐츠 대가 지급과 산업 진흥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방송 규제 완화의 우선순위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정부는 행정 부담을 줄이고 투자를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유료방송사에 대한 재허가·재승인 제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규제를 줄여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재허가 제도는 PP 보호와 상생 협력 의무를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부과하는 사실상 유일한 장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폐지한다면 플랫폼 중심의 불균형만 더 커질 뿐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 폐지가 아니라, 기존 재허가 조건 가운데 PP 보호와 상생에 필요한 사항을 실효성 있게 법제화하는 일이다. 산업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먼저 마련한 뒤 규제 완화를 논의하는 것이 옳은 순서다.

안전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하는 이유는 최근 심화되고 있는 콘텐츠 사용료 갈등에서 잘 드러난다. 유료방송사들은 저가 요금 정책과 홈쇼핑 송출수수료 의존형 매출 구조의 개선 등 내부혁신보다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유료방송의 핵심 경쟁력인 콘텐츠 비용부터 줄이려고만 하고 있다. 또한 유료방송사들은 비용을 줄이겠다는 명분 하에 콘텐츠 공급자와 협의나 합의를 거치기보다 일방적인 산정기준을 제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장의 규칙 자체를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하게 되면 플랫폼과 PP가 상생하는 건전한 시장질서가 훼손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올해 하반기 유료방송 진흥 전략 수립을 예고했다. 전략의 성패는 결국 콘텐츠에 달려 있다. 콘텐츠에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고, 그 대가가 다시 제작 투자로 이어져 더 나은 콘텐츠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유료방송 진흥의 본령이다. 이제는 정책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 플랫폼 중심에서 콘텐츠 중심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과감히 옮겨야 한다. 방송콘텐츠 진흥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플랫폼 규제 완화에 앞서 상생을 위한 최소 안전장치를 법제화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콘텐츠 친화적 정책 기조로의 전환은 PP 업계만을 위한 요구가 아니라, 한국 방송미디어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임정수 서울여대 영상미디어학부 교수 whotalks@sw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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