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검색하지 않는 소비자, 유통의 경쟁법칙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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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현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회장

온라인 쇼핑의 시작은 오랫동안 '검색'이었다. 소비자는 필요한 상품이 생기면 포털이나 쇼핑 플랫폼에 상품명을 입력하고, 검색 결과에 등장한 상품 가운데 가격과 배송 조건, 구매 후기를 비교해 하나를 선택했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이 익숙한 출발점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간편식'이나 '밀키트'를 검색했다면, 이제는 AI에게 “퇴근 후 가족과 먹을 저녁 메뉴를 추천해줘. 3~4명이 먹을 수 있고 조리 시간은 15분 이내면 좋겠어”라고 요청할 수 있다. AI는 식사 목적과 인원, 취향, 조리 시간, 원재료와 영양 정보, 소비자 평가, 배송 조건 등을 종합해 적합한 상품을 제안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AI 쇼핑 에이전트'다. 생성형 AI가 질문에 답하고 상품을 추천하는 수준이라면 AI 에이전트는 소비자가 정한 조건과 목적에 따라 상품을 탐색·비교해 선택을 돕는다. 나아가 주문과 결제까지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무엇을 살까'를 도와주는 AI에서 '나를 대신해 쇼핑하는 AI'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이미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은 기존 '루퍼스(Rufus)'와 알렉사(Alexa)+를 결합한 '알렉사 포 쇼핑'(Alexa for Shopping)을 선보이고, '바이 포 미'(Buy for Me) 등 AI 에이전트 기반 쇼핑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오픈AI는 '에이전틱 커머스 프로토콜(ACP)'을 상품 탐색까지 확장하며 챗GPT의 쇼핑 경험을 고도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쿠팡은 쇼핑 전반에 AI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는 '쇼핑 AI 에이전트'를 출시해 상품 탐색·요약을 넘어 사용자의 쇼핑 맥락을 이해하고 먼저 대화를 제안하는 단계로 기능을 고도화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온라인 유통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는 '노출'이었다. 검색 결과 첫 화면과 추천 영역에 어떤 상품이 등장하는지가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소비자를 대신해 상품을 탐색하는 환경에서는 '검색 결과에서 몇 번째로 노출되는가'보다 'AI가 어떤 상품을 정확히 이해하고 추천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여기에서 핵심은 '상품 데이터'다. 앞서 예로 든 간편식을 AI가 정확히 추천하려면 적정 인원과 조리 시간, 원재료와 영양성분은 물론 가격·재고·배송 조건·교환·환불 규정까지 시스템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돼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중소 판매자와 신생 브랜드에는 위기이자 기회가 열린다. 좋은 상품을 가지고도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면 발견될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반대로 정확한 상품 정보와 신뢰할 수 있는 거래 이력, 차별화된 가치를 갖춘 기업이라면 규모가 작아도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온라인 판로 지원도 단순한 입점 지원을 넘어 상품 정보 표준화와 데이터 품질 개선까지 확대될 필요가 있다.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유통기업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I가 소비자를 대신해 상품을 찾고 비교하고 구매까지 한다면 고객과의 관계는 누가 갖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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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AI 이미지

유통기업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자산은 거래만이 아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검색하고 비교해 최종적으로 무엇을 구매했는지에 대한 데이터 역시 핵심 자산이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화 추천과 멤버십, 광고, 재구매 서비스를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탐색과 비교, 추천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하면 구매 여정의 일부가 기존 플랫폼 밖에서 이뤄지고 소비자가 플랫폼을 방문하는 시점도 뒤로 밀릴 수 있다. 실제로 아마존과 퍼플렉시티 사이에서 벌어진 AI 에이전트 접근권 분쟁은 이러한 문제가 현실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존은 자체 에이전틱 쇼핑 기능을 확대하는 동시에 외부 AI 에이전트의 자사 플랫폼 접근에는 제한적인 태도를 보인다.

AI는 새로운 고객 유입 채널인 동시에 고객 접점을 차지하는 새로운 '게이트키퍼'가 될 수도 있다. 결국 AI 쇼핑 시대의 경쟁은 AI에게 선택받는 상품을 만드는 경쟁이자 소비자와의 관계와 구매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를 둘러싼 경쟁이 될 것이다.

AI 에이전트가 구매 과정에 깊이 들어올수록 소비자 신뢰의 중요성도 커진다. 잘못된 상품 정보나 허위 후기가 추천에 반영되거나 광고성 정보와 객관적 추천의 경계가 불명확하다면 AI 쇼핑에 대한 신뢰를 얻기 어렵다. 특히 AI가 주문과 결제까지 수행한다면 잘못된 추천이나 주문이 발생했을 때 AI 사업자·플랫폼·판매자 가운데 누가 어느 범위까지 책임질 것인지도 새로운 과제가 된다.

이에 세 가지 방향의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 카테고리별 최소 필수 데이터 항목에 대한 공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중소 판매자도 AI 친화적인 상품 정보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둘째, 책임을 일률적으로 부과하기보다 AI 사업자·플랫폼·판매자 등 각 주체의 역할과 실질적 통제 가능성을 기준으로 책임을 배분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셋째, 글로벌 AI 사업자가 국내 소비자의 상품 탐색과 구매를 실질적으로 중개한다면 국내 플랫폼에 적용되는 소비자 보호와 표시·광고, 제품 안전 등의 기본 원칙을 균형 있게 적용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부과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대형 플랫폼과 글로벌 기업에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AI가 소비자의 목적과 조건에 맞는 상품을 찾아주는 환경에서는 상품의 차별성과 정확한 정보, 신뢰가 더욱 중요해진다. 규모가 작은 식품업체라도 원재료와 제조 방식, 영양성분, 조리 방법, 보관 방법 등 상품 정보를 충실히 제공하고 신뢰를 축적한다면 특정 조건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커진다. '얼마나 많이 광고했는가'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조건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물론 AI 에이전트가 당장 검색과 쇼핑 플랫폼을 대체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결제 권한과 본인인증, 개인정보 보호, 추천의 투명성, 오류 발생 시 책임과 교환·환불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당분간은 검색과 쇼핑 플랫폼, AI 에이전트가 공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국내 유통기업은 지금부터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상품은 AI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AI가 우리 상품을 추천하고 선택할 만큼 정확한 상품·거래정보를 제공하고 있는가. 그리고 AI를 통해 들어온 소비자를 어떻게 다시 우리의 고객으로 만들 것인가.

지난 20여년 온라인 유통의 경쟁은 검색 결과 첫 화면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었다. 다음 경쟁은 AI가 제시하는 몇 개의 선택지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될 것이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힘은 광고비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갖췄는가에서 나올 것이다.

조성현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회장 csh@kolsa.or.kr

〈필자〉국내 온라인쇼핑 및 디지털 플랫폼 산업 발전과 자율규제 활성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유통학회·한국경제법학회·한국소비자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하도급법학회 대외협력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 한국제품안전협회 제품안전정보 오픈포럼 운영위원,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 자문위원 등을 맡아 유통·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플랫폼 규제 분야에서 활발한 정책 및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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